급락세 탄 유가 향방은…'5대 변수' 촉각

지난해 말 주요 산유국의 감산 합의로 반등하던 국제유가가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해 11월 말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50달러 선 아래로 밀렸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50달러를 웃돌긴 하지만 1주일 새 10% 가까이 추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셰일원유 △석유수출국기구(OPEC) △재고 △헤지펀드 △수요 등 5가지 요인이 원유 투매를 부추겼다며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가 배럴당 50달러 선을 지켜낼지 여부도 이들 변수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브렌트유 선물가격 추이(단위: 배럴당 달러)/그래프=블룸버그

◇美 셰일업계 증산 바람
미국 셰일업계는 유가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생산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감산 합의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웃돌자 최근 다시 증산 태세로 돌아섰다. 미국 내 시추설비는 18개월 만에 최대로 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자국 산유량이 올해 하루 30만배럴 늘어난 920만배럴에 달하고 내년에도 하루 50만배럴 더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셰일업계는 지난 2년 유가가 급락하는 동안 구조개혁을 통한 비용절감에 총력을 쏟아부었다. 생산효율성이 높아진 만큼 유가 하락 압력에 전보다 강해졌다. 이런 가운데 일부 업체는 캐나다 타르샌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애스펙츠는 올해 미국과 캐나다의 산유량이 하루 100만배럴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OPEC 5월 총회
지난해 11월 말 역사적인 감산 합의로 유가 안정을 주도한 OPEC은 반등하던 유가가 다시 급락세로 돌아서 난감한 입장이 됐다. 미국 셰일업계의 증산 움직임은 경계감을 부추겼다. 오는 5월25일에 예정된 총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FT는 OPEC의 선택지를 3개로 봤다.

우선 6월까지인 감산 합의를 연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감산 규모를 확대할 수도 있다. 반대로 시장 안정자 역할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는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가 급락세를 더 자극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그럴 듯 하다고 본다. OPEC이 현 수준의 감산 합의를 연장하면 올 하반기에는 원유재고가 마침내 줄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적어도 겉으로는 파트너들과 함께 감산을 통해 국제 원유시장의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비OPEC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는 미국 셰일업계를 경계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유가가 오르면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을 늘려 원유시장을 압박할 것이라며 추가 감산 여부를 결정하긴 이르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참여하지 않으면 사우디의 추가 감산도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날 공개된 OPEC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산유량이 전체적으로는 줄었지만 사우디는 오히려 1월보다 생산량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 美 재고
FT는 미국의 원유재고가 계속 늘고 있는 게 OPEC이 단기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원유시장에 투매바람을 일으킨 게 바로 EIA의 원유재고 보고서다. 미국의 원유재고가 9개월 연속 늘어 사상 최대(5억2800만배럴 이상)를 기록했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원유재고만 두드러질 뿐 다른 지역의 원유재고는 점점 빠듯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원유재고가 유독 주목받는 건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으로 미국 셰일업계와 OPEC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헤지펀드 강세 베팅 축소
헤지펀드 같은 투기세력은 OPEC의 감산 합의에 호응해 올 1~2월 유가 상승에 사상 최대 규모의 베팅을 했다. 올 들어 지난달 21일까지 브렌트유, WTI 통틀어 순매수 규모가 9억5100만배럴에 달했다. 전 세계 10일치 수요와 맞먹는다.

헤지펀드들은 그러나 최근 순매수 포지션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유가 상승에 베팅이 몰리면서 유가 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에 대비하는 헤지 비용이 부쩍 커진 탓이다.

◇수요, 정점 도달했나
글로벌 원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전망도 유가 급락세를 자극했다. 전기차 등의 확산으로 앞으로는 원유 수요가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OPEC은 글로벌 원유 수요가 올해 하루 평균 130만배럴 늘어 963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전기차에 밀려 기존 자동차 수가 줄기보다 연간 4000만대씩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의 원유 수요 증가세가 하루 60만배럴, 지난 10년 평균치의 절반 수준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모간스탠리는 비행기, 화물운송, 석유화학제품 수요 역시 늘면서 원유 소비를 늘리고 있다며 원유 수요는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