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韓·美 기준금리 역전되나…한은 통화정책 험로 예고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권혜민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미국이 15일(현지시간) 열린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1.00%로 높였다.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만에 추가 금리인상이다. 연내 두 차례 금리를 더 올리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대로라면 연내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유력하다. 이에 한국은행 통화정책 대응이 주목된다.

◇ 1.25% 기준금리 향방은= 무엇보다 한은이 지난해 6월 금리인하 이후 8개월째 동결한 1.25% 기준금리 향방이 가장 큰 관심사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가 올해에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향성을 밝혔지만 시장은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올해 추가 금리인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인식이 파다하다. 나아가 미국이 6월에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경우 하반기에는 금리인상을 검토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는 앞서 1999년, 2005년 두 차례 미국 금리인상기 한은의 대응을 지켜 본 ‘학습효과’ 때문이다.

한은은 미국 금리인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별도의 통화정책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으로 시장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자 약 8개월 후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췄다.

한은은 앞서 미국 금리인상기와 현재 상황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항변한다. 37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만기 1년 미만 단기외채 비율도 30% 미만으로 관리되는 등 외환건전성이 당시보다 크게 개선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내 경기상황을 보면 안심할 수 없다.

2005년~2007년 미국 2차 금리인상기에는 우리나라 연평균 성장률이 4~5%대로 호황 국면이었으나 최근 성장률은 2%대로 가라 앉았다. 대출금리 인상시 이자부담 증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가계부채 규모는 500조원에서 1350조원으로 2.7배나 증가했다.

한은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장금리는 방향을 위로 하고 있다.

한은 금리인하 직후였던 지난해 7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2%로 역대 최저치였으나 최근 1.8% 수준에 근접했다. 평균 2% 후반대였던 은행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5%대로 치솟았다. 대체로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신용대출 이자 부담도 커졌다.

◇ 어려워진 금리인하…한은 관망세 장기화될 듯= 한은 내부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연준(Fed)이 연내 2회 이상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에 국내 경기상황이 더 악화되면 금리인하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금통위 내부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2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금통위원들의 인식이 상당히 바뀌었다.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움직임에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본유출’ 위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셈이다.

실제로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은 6개월째 순유출 됐다. 이 기간 빠져나간 자금은 116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금리 영향을 적게 받는 주식시장에서 11개월째 자금이 순유입된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외 투자기관들의 한은 통화정책 전망도 바뀌었다. 특히 지난 1월 한은이 올해 3번 금리인하를 할 것으로 예측한 모건스탠리는 최근 ‘동결’ 전망으로 급선회했다.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거론했던 국내 투자기관들도 동결로 무게추가 옮겨졌다. 일부 투자기관들은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금리인상을 예상한다.

이 총재의 발언도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정례 간부회의에서 “한은 정책변화에 영향을 줄 만한 여건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며 “예상보다 미국 추가 금리인상 속도가 가속화될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선 이 발언이 추가 금리인하 시그널을 사실상 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금리동결 기조가 장기화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위험 부담이 높은 금리조정보다 금융중개지원대출 적용범위 확대 또는 통화안정증권 발행,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 등 단기 시장안정화 조치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연준이 올해 네 차례 금리를 올린다면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이 될 수 있고 한은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당장 한은이 금리조정을 하기에는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