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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태극기'에 대한 연민

박종면칼럼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입력 : 2017.03.2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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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여에 걸친 탄핵사태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를 피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회를 한 번만 살렸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하는 치욕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헌재가 지적한 대로 최순실 스캔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후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를 은폐하고 숨겼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고는 검찰과 특검 조사, 청와대 압수수색을 모두 거부했다.

더욱이 헌재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들이 보인 태도는 재판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헌재를 국회 수석대리인이라고까지 모욕했다. 변호인단이 탄핵안을 가결한 국회의 의사결정에 잘못이 있기 때문에 헌재가 심리해서는 안 된다는 탄핵 각하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전직 헌재 재판관 등이 포함된 변호인단은 헌재 판결 직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기각이 확실시된다고까지 보고했다고 한다.

박근혜 본인과 변호인단만 잘못한 게 아니다. 주변 참모들도 다르지 않았다. 여론 조사 결과 탄핵 찬성이 꾸준히 75~80% 수준을 유지하는 데도 여론조사 응답률이 10~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어 여론이 탄핵 반대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다. 주말 태극기집회 참석자가 1000만명이니, 500만명이니 하는 ‘탄기국’(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측의 황당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행동한 데 대해서는 불행한 개인사 등을 배경으로 공감능력 부족을 지적할 수 있겠다.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는 인격장애증후군으로 볼 수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라면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끝이다. 문제는 박근혜 한 사람이 아니고 변호인단과 참모진, 나아가 핵심 친박세력과 주말마다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한 ‘탄기국’ 지도부까지 집단적으로 오류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엇보다 사실을 외면하고 위계질서와 권위에 의해 움직이는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들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권위적이고 경직적이었음을 감안하면 탄핵사태는 박근혜 본인과 지지세력이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은 ‘촛불’ 때문이 아니라 ‘태극기’ 세력이 자초한 일이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자신의 신념이나 태도와 다르게 돌아가자 이를 거부하고 부인하는 자기기만에 빠지고 말았다.

촛불세력에 “너희는 늙지 않을 줄 아느냐”며 소리친 태극기 세력은 스스로 인정한 대로 늙은 사람이 많다. 변호인단도 노년층이 주축이다. 정신도 두뇌도 결국 신체의 일부다. 정신과 신체의 경계는 흔히 생각하듯이 뚜렷한 게 아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나이가 들면 사고도 판단능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오히려 사고력은 체력보다 먼저 보수화하고 노화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탄핵반대 세력의 집단적 판단 실수와 오류, 이로 인한 탄핵인용은 이미 예고된 일이다. 젊은 ‘촛불’을 늙은 ‘태극기’가 어떻게 당해내겠는가.

이제 젊은 ‘촛불’은 탄핵이 성사된 것에 환호하기만 해선 안 된다. 늙은 ‘태극기’가 20년 뒤 30년 뒤 자기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도 언젠가 ‘태극기’가 된다. ‘촛불’이 ‘태극기’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비난과 무시가 아니고 연민과 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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