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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킹메이커·왕실장…'명성날린' 역대 정권 비서실장은

[the300]['대통령의 그림자' 비서실장 ③]'권력' 정점에선 39인 '별칭'도 다양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입력 : 2017.03.21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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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킹메이커·왕실장…'명성날린' 역대 정권 비서실장은



대통령비서실장의 역사는 60년 가까이 된다. 최고 실세 권력을 누린 이가 적잖다. ‘왕실장’으로 불린 이들이다. "호가호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로 존재감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들도 있다.

◇막강 권력 '이후락'-최장수 '김정렴'-'킹메이커' 김윤환=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은 김양천 전 경무대 서장이다. 이기붕 전 부통령도 한때 비서실장을 맡아 '2인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때 비서실 역할은 단순 비서·사무보조 역할에 국한돼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은 윤보선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이재항씨로 본다. 이씨를 시작으로 현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까지 포함하면 모두 39명. 이른바 ‘실세’ 비서실장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3년 12월이다.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 출신 이후락씨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이 실장은 6년간 자리를 지키며 박정희정권의 실세로 자리잡았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장관 인사와 여당인 공화당 공천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라진 직제였던 '부통령'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뒤를 이은 김정렴씨는 최장수 실장으로 기록된다. 9년2개월간 비서실장을 지냈다. 상공부 장관을 지낸 경제 전문가인 그는 조용한 참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유신시대에 맞는 경제·행정비서였다는 평가도 있다. 퇴임 직후 "승지나 도승지는 말이 없는 법"이라고 측근에게 말한 뒤 외부 접촉을 끊은 것도 '묵묵한 보필'을 위해서였다. 뒤이은 김계원 비서실장, 최규하정권 시절 최광수‧김경원 비서실장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5공화국 대통령비서실장의 힘은 이전 정권보다 약했다. 5공화국의 실질적 설계자인 허화평·허삼수씨가 청와대 수석으로 국정 전반에 막강한 힘을 행사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민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군 출신이 아닌 이범석·함병춘씨 등을 내세운 것도 한 요인이다. 5공화국말이던 1987년 6·29선언 후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전두환정권의 과도기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김윤환씨는 '킹메이커'란 별칭을 얻으면서 승승장구했다. 허주(虛舟)로 불렸던 김 실장은 '김영삼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노태우정부의 첫 비서실장인 홍성철씨는 2년이란 비교적 장기간 재임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개인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다. 홍 비서실장 이후 임명된 노재봉 비서실장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비서실장 9개월 만에 총리로 영전했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유력 대권주자로 뜬 '문재인'=1993년 등장한 문민정부에선 4선 의원인 박관용씨가 첫 비서실장을 맡았다. 정치적 경륜을 토대로 2년 가까이 비서실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훗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국회의장을 맡기도 했다. 주미대사 출신 한승수를 거쳐 김광일씨가 비서실장 바통을 이어받았다.

처음으로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DJ) 대통령은 초대 김중권 비서실장에 이어 한광옥‧이상주‧전윤철‧박지원 등 5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김중권 비서실장은 6공의 마지막 정무수석이었지만 동서화합과 국민통합 카드로 발탁된 케이스로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표까지 지냈다. 전윤철 비서실장은 재임기간이 2002년 1월29일부터 4월15일까지로 역대 최단명 기록을 갖고 있다. 김대중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였다. 김대중정부에서 공보수석·정책기획수석·정책특보에 이어 비서실장까지 DJ 청와대에서만 네 번째 직책을 맡았다. 박 대표는 이후락씨 이후 대표적 실세 비서실장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희상‧김우식‧이병완‧문재인 비서실장과 함께했다. 참여정부 시절 당청간 관계가 재정립되고 정책실장이 신설되면서 국정 2인자로서 비서실장 이미지는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문재인 비서실장이다. 노 대통령의 변호사 동업자이자 인권변호사 동지였던 그는 두 번의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마지막 비서실장에 올랐다. 특히 그는 노 대통령이 서거한 후 친노(친노무현) 진영을 대표할 대선주자로 급부상했고 현재 대선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린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대선주자로 선출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MB 비서실장 대신 대통령실장=이명박(MB)정부 때는 류우익‧정정길‧임태희‧하금열 실장이 나왔다. 이명박정부는 '대통령비서실장'을 '대통령실장'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이 시절 비서실장은 상대적으로 대통령 보좌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류우익 초대 대통령실장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로 불과 4개월 만에 물러났다.

뒤이은 정정길 실장도 이명박정부의 중간선거 격이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물러났다. 임태희 실장은 '50대 젊은 청와대론'에 힘입어 비서실장에 임명됐고 고용부 장관까지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상 비서실장 인선부터 시작하고 내각을 꾸리던 관례를 깨고 취임 1주일 전에야 허태열 비서실장을 지명했다. 허 실장은 대통령의 여름휴가중 청와대를 지키고 있다가 경질되는 초유의 기록도 남겼다. 뒤를 이은 게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김 실장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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