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아진 세계유산…'한양도성' 수백억 복원비용 물거품

문화재청은 지난 21일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로부터 '등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사진=문화재청

지난해 '한국의 서원'에 이어 '한양도성'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실패했다. 세계문화유산이 1000여 건을 돌파하면서 등재 기준이 강화됐지만 등재 절차를 준비하는 문화재청과 관련 지자체의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시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하 '이코모스')에서 '등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일단 등재 신청을 철회하고 빠르면 2020년을 목표로 재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코모스는 신청 유산을 심사해 '등재 권고'(Inscribe), '보류'(Refer), '반려'(Defer), '등재 불가'(Not to inscribe) 등 네 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결정한다. 여기서 '등재 불가' 신청을 받으면 이후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결정에서도 불가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재신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등재 신청을 철회한 것.

문화재청은 "한양도성의 경우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10가지 기준 중에 3가지 기준에 부합한다는 제안서를 작성했는데 세계유산이 될 만큼 탁월성을 증명하지 못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면밀하고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치겠다"고 설명했다.

한양도성의 경우 △수도 경계의 상징성과 지속적 관리의 전통을 가진 유산 △지형과 일체화 된 유기적 구조물이자 각 시기별 축성기술 특징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 △풍수와 자연 지세를 활용한 수도 입지의 탁월한 사례 등 3가지 기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전 구간 편축으로 축성된 유일한 수도 성곽'이라는 특징에 대해 외국 성곽과의 차별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국 사례와의 비교 연구가 부족했던 것 같아 비교 분석을 통해 '탁월한 가치'를 보완해 재추진하겠다"며 "가장 빠른 경우 2019년 등재 신청을 해 2020년 등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구 광희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서울 한양도성을 탐방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학계에는 '한양도성'의 등재 실패가 큰 충격이다. 우리 문화유산이 이코모스에서 '등재 불가' 판정을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자연유산까지 포함하면 지난 2009년 '한국의 백악기 공룡해안' 사례가 있다. '불가' 사례를 포함해 문화재청이 '자진 철회'를 선택한 경우는 이로써 총 4건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반려' 판정을 받은 '한국의 서원'과 1995년 격렬한 주민 반대에 부딪힌 '설악산 자연보호구역'에 대해서도 철회 결정을 내렸다.

지금껏 '한양도성'에 쏟아부은 정성도 상당하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 한양도성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사용한 비용은 약 3억원이다. 분야별 연구와 자문 등이 포함된 비용이다. 2012년에는 한양도성 등재 추진을 계기로 서울시 내부에 전담 '한양도성도감과'도 설치됐다. 이후 수 년에 걸쳐 한양도성 복원·보전에 투입된 비용은 수백억원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세계유산 수가 1000개를 넘어가면서 이전보다 등재 기준이 강화된 것은 맞다"며 "보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등재 절차에 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전문가는 "성과주의에 매몰돼 충분한 검토 없이 등재 신청을 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국내 문화유산은 △강진도요지 △설악산천연보호구역 △남해안일대 공룡화석지 △서남해안 갯벌 △염전 △대곡천암각화군 △중부내륙산성군 △우포늪 △낙안읍성 △외암마을 △서원 △한양도성 △김해·함안 가야고분군 △고령 대가야고분군 △전통산사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등 16건이다. 등재 후 최소 1년간 충분한 연구와 자료 축적 등의 과정을 거치면 세계유산 신청자격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