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보글보글·테트리스’ 복고풍 전자오락의 ‘슬그머니 재귀’

초대형 화면을 지원하는 총싸움 오락게임/사진=류준영 기자

“어이쿠, 여기도 지뢰밭이네.” 부천의 한 대형마트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별의별 장르의 오락기가 식당가는 길 곳곳에 설치돼 아이의 눈을 현혹한다. 마트 입구 쪽에 전략적으로 배치한 레고 등 장난감 매장을 간신히 빠져 나왔는데, 오락기가 도열한 이곳은 실로 넘기 힘든 두 번째 관문이다.


‘철권’, ‘킹오브파이터’ 등의 격투 게임부터 같은 색의 구슬을 쏘아 맞히는 ‘보글보글’, 모양이 다른 블록을 끼워 넣는 ‘테트리스’ 등 20여년전 향수를 불러일으킬 전자오락이 도처에 널려 있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PC게임이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몇 년전부턴 스마트폰 대중화로 앱(애플리케이션) 기반 게임들이 보편화되면서 전자오락의 인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근래 세컨 잡·부업용으로 오락기 임대업이 인기를 얻으면서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한 판에 500원, 화면이 크면 1000원. 몇 판 정신 놓고 하다보면 지갑은 금세 탈탈 털리고 만다.

“장보고 난 후에 하자”며 아이를 살살 달래봤지만 안 통한다. 가자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상황이 피곤할 정도로 반복된다. 그 흔한 ‘인형뽑기’가 있던 자리를 차츰 7080세대 오락기기가 차지하면서 마트 나들이는 고난의 행군이 돼 버렸다.

따지고 보면 AR(증간현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의 등장으로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단순한 패턴, 직관적인 UI(사용자 환경)는 만 4세 승재도 이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환경을 제공한다. 이미 몬스터볼을 다 소진해 게임아이템을 구매하거나 포켓스탑을 서성여야 하는 처지지만, 길 가다가도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 앞에 붙어 있는 ‘포켓몬’ 파트너 매장 포스터를 보면 그 즉각 “포커몬~포커몬”하며 휴대폰을 달라고 떼를 쓴다.


그 옛날 전자오락실은 5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쥔 아이들로 늘 북새통이었다. ‘다음은 내 차례’라며 오락기계 위에 50원짜리 동전을 올려놓은 경험이 있는 아빠는 “오락 많이 하면 눈 나빠져서 안 된다”고 떳떳하게 말 할 입장도 못 된다.

특히 근래 눈에 자주 띄기 시작한 VR(가상현실) 게임기는 오락기보다 훨씬 강적이다. VR 프렌차이즈를 노리고 판촉전을 펼치는 회사 이벤트부스 앞에선 어찌 손 써볼 방법이 없다. 회사 측이 고용한 VR 게임 고수의 플레이는 길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정도를 넘어, 마치 뮤지컬의 한 장면 같은 화려한 가면(VR헤드셋) 무도회와도 같았다.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던 것 같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사진=소니

호기심에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VR’를 직접 해봤는데, 여건만 된다면 관련 액세서리를 포함해 기기를 통째로 사고 싶었다.

기기 가격은 30만원대, 게임 타이틀 가격은 하나당 평균 7만원대. 와이프에게 사달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입을 열지 못한 순간은 숨이 막힐 정도로 길었지만, 가격을 확인한 뒤에 포기는 광속으로 빨랐다.

매장 한 켠엔 A4 용지에 흘겨 쓴 ‘매진’이라는 안내판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그 순간 승재의 표정은 당장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한편에선 걱정도 된다. 기술적으로 보완할 점이 많다고 들었다. VR가 아이들에게 의학적으로 정신적 착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상업화’가 이뤄지는 게 아닌가라는 것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나서서 ‘VR 관광 서비스존’, ‘VR 극장’ 등을 앞다퉈 도입하려는 모습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더 불안케 한다.

최근 성인용·사행성 VR게임 출시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청소년용 전자오락실이 2002년 이후 등장한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성인오락실로 바뀐 뒤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일각에선 시작도 전에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하는 관측도 나온다. 좀 더 성숙된 기술 발전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음지서 양지로 끌어내는 노력 또한 절실해 보인다.

이를테면 VR 게임은 PC게임처럼 또 하나의 스포츠 장르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뛰어놀 공간이 부족한 아이들, 특히 비만이 많은 요즘 농구나 야구 VR 게임으로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운동할 수 있다면 VR 게임에 눈을 부라리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