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 넘은 전경련 혁신안…"눈가리고 아웅"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와 함께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4일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이름을 바꾸고 정경유착 근절을 선언한 것을 두고 '발등의 불'인 해체론을 피하는 데 급급한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대 자금줄이었던 삼성 등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불가피했던 조직 개편과 예산 축소를 진정한 의미의 쇄신안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흘러나온다.

10대 그룹 한 관계자는 이날 전경련의 혁신안 발표를 지켜본 뒤 "새로운 내용은 간판을 바꾼 것밖에 없는 것 같다"며 "요즘 세상이 간판을 고쳐단다고 해서 통하는 시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혁신안이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인사들이 공론화한 해법에조차 못 미쳤다는 실망감도 적잖은 분위기다. 구 회장은 지난해 12월말 전경련 탈퇴 입장을 밝히면서 "전경련을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처럼 싱크탱크로 운영하면서 재계의 친목단체로 남기자"고 제안했다.

중견그룹사 한 임원은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라면 요즘 같은 상황에서 먼저 나서 매를 맞는 자세도 필요한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당초 싱크탱크 전환 가능성을 모색했지만 내부 이견이 빚어지자 기존 정책연구기능을 산하 연구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하는 수준에서 논의를 봉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안의 골자인 기업 중심 경제단체로의 변신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나 중소기업중앙회와의 차별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조직과 체계가 다르니 차이점을 찾으려면 없진 않겠지만 솔직히 큰 차이를 모르겠다"며 "기업 실무자 입장에서 전경련에 건의한 내용이라고 해서 상의에는 얘기를 못하겠냐"고 말했다.

정경유착 근절도 해묵은 레파토리다. 전경련은 1996년 노태우 정부 당시의 정치자금 수사가 본격화되자 기업윤리헌장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20년만에 도돌이표 쇄신안을 내는 상황에 처했다.

경제단체라는 골격을 유지하는 한 정권의 강압이나 입맛에 따라 언제든 정경유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간사는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을 주도한 사실을 축소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에 나서고 있다"며 "근본적인 쇄신방향을 외면하고 조직유지를 선택한 전경련이 과연 쇄신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