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3년 맞은 이주열 한은 총재…‘매파 본색’ 되찾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당시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부임 이후 잇단 금리인하로 가계부채 급증세를 불러왔다는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부 부동산 부양책에 동조했다는 일각의 비판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셈이다. 이 총재는 “그동안의 금리인하는 경제회복에 기여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 매파 한은맨, 비둘기파 변신한 이유= 31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내달 1일 취임 3주년을 맞는다. 4년 임기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이 총재는 부임 초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내세운 정통 한은맨 출신이어서다.

그는 역대 한은 총재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쳤다. 당시 일부 의원들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에 따른 물가하락), 가계부채 부실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한은을 이끌었던 박승, 이성태, 김중수 전 총재는 취임 직후 3개월 이내 금리인상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총재 부임 당시 한은이 예측한 2014년 성장률은 3% 후반대, 2015년은 4% 초반대였다. 그가 정부와 정치권의 부양책 요구에 단호하게 맞선 이유였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예상치 못한 대형 악재가 터졌다. 온 국민에 충격을 던져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내수 지표가 일제히 고꾸라졌다. 정부와 한은은 물론 국내 주요 연구기관들도 성장률 전망을 대폭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결국 4개월 뒤인 8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로 대응했다. 그래도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두 달 뒤인 10월 또 다시 금리를 내렸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2.00%로 글로벌금융위기 충격이 한창이었던 2009년과 같은 수준이 됐다.

2015년 3월 한은 금통위는 1.75%로 금리를 또 낮췄다. 한은이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1%대 금리를 처음으로 선택했다. 3개월 뒤인 6월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확산에 대응해 또 다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015년 두 차례 추가 금리인하와 2016년 8월 마지막 금리인하는 정부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와 맞물려 가계부채 급증세를 유도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실제로 가계부채는 2015년 117조8000억원 늘어 역대 최초로 연간 10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41조2000억원 증가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11%대로 2% 중반대인 성장률을 4배 이상 웃돌았다.

◇ “아쉬움 컸다”는 이 총재, 마지막 1년 목표는 ‘안정’= 이 총재는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많이 늘어난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금리인하를 하지 않았다면 성장률이 더 곤두박질 쳤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는 “돌이켜보면 거시건전성 정책이 좀 잘 짜여져서 뒷받침 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는데 통화정책은 분명히 기여했다”며 “통화완화 정책을 안 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1344조원으로 불어난 가계부채 총량을 우려했다. 국내총생산(GDP)의 90%를 넘어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국제결제은행(BIS) 분석을 인용하면서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부채 총량을 인위적으로 줄이기보다 경기회복을 통한 고용, 소득 증가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그는 남은 임기에는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미국 금리인상, 중국 무역갈등, 보호무역주의 심화,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 등으로 어느 때보다 리스크 요인이 크기 때문에 ‘방어’에 전력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금리인하는 어디까지나 단기 경기대응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중요하다는 것. 이 총재는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 총재가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 흐름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린다. 대외여건상 추가 금리인하는 어려워진 상황에서 1.25% 기준금리를 계속 유지할지, 임기 내에 금리인상을 할지 주목된다.

만약 내년 4월까지 한은 금통위가 금리동결 기조를 유지한다면 이 총재는 한 번도 금리인상을 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무리하는 첫 한은 총재가 된다. 역대 첫 인사청문회, 사상 최저금리에 이어 '최초' 기록을 하나 더 쓰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