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인스타에 뜨니…SNS 갈아타는 김대리

#"자네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뭔가? 나도 이번에 새로 만들었어." 직장인 A씨는 최근 상사의 이같은 질문에 등골이 싸늘해졌다. 상사에게 어쩔 수 없이 아이디를 알려준 A씨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인스타그램에 몇 개의 풍경사진만 남겨두고 개인적 사진이나 게시글을 모두 지웠다. 지난해초 자주 이용하는 SNS를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탄 A씨는 '이제 인스타그램도 끝이구나' 푸념하며 다른 SNS 계정 만들기에 들어갔다.

기성세대를 피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피란'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또래 사이에 일상을 공유하며 SNS에서 휴식을 즐겨왔지만 직장상사나 동료의 '친구신청'을 받은 뒤 소수의 친구와만 소통하는 다른 계정을 만들거나 아예 다른 SNS로 떠나는 것이다.

◇휴가사진 올렸더니 부장님이 '좋아요'…세컨드 계정 만들고 SNS 갈아타고


31일 업계에 따르면 SNS에서 직장상사나 동료 등의 친구신청을 받고 고민에 빠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원치 않는 '친구들'을 피해 다른 SNS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을 자주 이용하는 직장인 한모씨(29)는 "상사나 동료가 친구신청을 하면 받지 않을 수도 없지 않냐"며 "얼마 전에는 휴가지에서 올린 내 사진에 상사가 '좋아요'를 계속 눌러 너무 신경이 쓰였다"며 "'좋아요'가 '좋니?'처럼 느껴져 더 이상 게시물을 올릴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회사생활을 잊고 쉬기 위해 떠난 곳에서 상사의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한씨는 주변 또래들만 하는 SNS 스냅챗 계정을 만들었다. 사진·영상 위주의 SNS 스냅챗은 메시지를 상대방이 확인하면 10초 이내 즉각 사라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최근 10대 등 젊은층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으면서 전세계 일 평균 이용자가 1억5000만명에 이른다.

SNS에서 직장상사나 동료 등에게 친구신청을 받고 고민에 빠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예 불편한 '친구들'을 피해 '세컨드' 계정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최모씨(27)는 "친구들과 파티에서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했는데 상사가 '젊은 여자가 그런 사진을 설정해두면 시집은 어떻게 갈 생각이냐'고 핀잔을 줬다"며 "프로필 사진도 마음대로 못하나 싶어 화가 나 아예 사적인 계정을 따로 만들고 정말 친한 소수의 친구와만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생활뿐 아니라 SNS를 통해 드러난 정치적 견해를 두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안모씨(32)는 "특정 정치인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는데 나중에 상사가 술자리에서 '그렇게 안 봤는데 ○○○를 지지하냐. 실망이다'라고 했다"며 "이후엔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것도 조심하게 됐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직장상사로부터 프로필 사진에 대한 지적을 받은 한 직장인의 카카오톡 대화/사진=카카오톡 대화 캡쳐

◇"SNS 안하면 '꼰대', 하면 오지랖"…기성세대도 "괴로워"


기성세대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씨(46)는 "요즘은 SNS를 안하면 직원들과 소통도 어렵고 시대흐름에 뒤처진다고 해서 겨우 SNS를 했는데 이젠 직원들이 '오지랖'이라고 수군댄다"며 "직원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건지 벽을 치고 살아야 하는 건지 난감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반응도 있다. 직장인 나모씨(39)는 "요즘 유행하는 SNS가 재미있어 보여 시작했을 뿐인데 주변에서 잘못하면 '꼰대'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며 "재미로 SNS를 할 뿐 SNS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느냐"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소통을 위한 SNS가 자칫 직장 내 소통을 가로막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선후배·동료간 SNS 예절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직원들의 SNS 이용은 명시적인 규칙을 만들 수도 없고 모호한 부분"이라며 "SNS가 상대방의 사생활이라는 상식을 갖고 공개된 게시물이라고 해도 꼭 모두가 보길 바란다는 뜻은 아니라고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편하게 사생활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SNS에선 직장동료끼리 적정선을 지키는 게 좋다"며 배려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