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챌린지 포럼' 새 엔진 달고…'교정 뒤 연구단지' 활주로 넓힌다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제3대 총장/사진=DGIST

‘마의 11분’.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제3대 총장이 DGIST 현재를 이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비행기 사고의 80%가 이륙 3분 내, 착륙 8분 전에 일어난다는 통설, 이 시간을 합쳐 이렇게 부른다.

“DGIST의 지금은 비행기 이륙 전 앞·뒤 바퀴가 전부 땅에서 뜨고 선수가 하늘을 바라본 상황이죠. 이 순간 모든 엔진이 최고의 속력을 내지 않으면 추락해요. 목표로 한 2~3만 피트 상공에 오르기 위해선 더 센 엔진과 더 넓은 활주로, 여기에 구성원의 뜻과 마음, 역량이 한데 모여야 합니다.”


DGIST는 그간 태양에너지융합연구센터, 웰니스융합연구센터, 고신뢰CPS연구센터, 미래자동차융합연구센터, 웰에이징연구센터, 협동로봇융합센터 등 총 14개 센터가 비교적 짧은 시간 경쟁적으로 세워졌고, 오직 강자만이 R&D(연구·개발) 투자비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중원무림과도 같았다. 그러나 손 총장이 이달 초 부임 뒤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각자 도생’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센터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협력 연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그랜드챌린지’시대 서막이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 것.

◇‘각자 도생’ 끝…‘그랜드챌린지포럼’ 서막 연다= 손 총장은 연구 수월성을 위해 ‘그랜드챌린지포럼’을 새롭게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앞서 말한 ‘더 센 엔진’이 바로 이것이다. 손 총장이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에서 26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에 꼭 들여오고 싶었던 제도였다.

“지금 여러 개의 센터가 앞으로 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지, 그런 목표를 지향하는 데 수월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겁니다. 그런 뒤 우리나라, 나아가 전 인류가 5, 10년 뒤 당면하게 될 이슈를 찾아 해결하는 ‘그랜드챌린지포럼’을 구성해 보려 합니다. 연구할 토픽을 연구자들이 각자 제시하고, 관심 있는 내용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모여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일몰형 모의 R&D그룹이죠, 그런 ‘센터 액셀런스(Centres of Excellence)’를 임기 동안 3개 정도 발굴해 키울 겁니다. DGIST하면 ‘그곳은 이런 연구를 잘 이끄는 연구그룹이 있는 곳’이란 연상이 될 수 있게 말이죠.”


올해 학부 입학 최종 경쟁률은 44.3대 1. 삼성종합기술원 출신 등 국내외 내로라하는 저명한 교수진에 전국 팔도에서 데려온 석·박사급 전문연구원, 이제 경남권 ‘인재들의 용광로’로 불리기 시작한 DGIST에겐 해볼 만한 시도라는 게 손 총장의 설명이다.

◇10만평 I&E존 구축…선순환 창업 생태계 일군다=손 총장은 아울러 10만평 규모의 산학융합연구단지 조성 방안도 내놨다. 그가 서두에 말한 ‘더 큰 활주로’가 이 것이다. 연구·학사부가 공존하는 DGIST 장점을 살려 산·학·연 협력연구의 새 틀을 마련하는 계획이다.

“DGIST 캠퍼스 뒤편에 있는 10만평의 발전부지를 I&E(Innovation&Entrepreneurship)존으로 개발해 산·학·연이 원활하게 협업하는 연구·기술창업 혁신클러스터를 만들 거예요. 이미 미국·유럽에선 좋은 대학이 있으면 바로 그 옆에 ‘사이언스파크’가 조성돼 기업과 대학 연구인력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거기서 나온 아이템이 새로운 창업으로 이어지잖아요. I&E존을 통해 기초·원천·응용·상용화 R&D부터 창업까지 성과를 확산할 수 있는 선순환적 창업 생태계를 조성할 겁니다. DGIST가 대구·경북지역에서 이런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 총장에 따르면 I&E 존은 크레이티브존·컨버전스존·커뮤니케이션존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크레이티브존’은 기술창업·출자 기업들에게 입주공간과 연구시설을 제공해 아이디어 발굴에서 기술연구, 사업화에 이르는 전주기적 창업 단계를 지원한다. ‘컨버전스존’은 대구지역 유망 산업 및 중소기업들과의 연계 연구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공간이다. ‘커뮤니케이션존’은 해외 전문가들과의 국제 연구 교류를 하는 곳으로 외국인 연구자의 거주 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베스트 보단 피저블 솔루션 찾겠다”=그가 제시한 이런 모델을 모두 완성하기 위해선 대학 임직원들 간 ‘참여의 문화’가 전제돼야 한다.

“그동안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분야에서 스마트자동차, 스마트홈 등을 구현하는 엔지니어링 연구를 해 왔는 데 엔지니어링은 사이언스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여러 가지 제약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주어진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거죠. 베스트 솔루션보단 피저블(feasible·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찾는다는 겁니다. 이상만을 제시하고 “자! 이 길로 달려가자”고 하면 아무도 안 가겠죠. 실제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향과 좀 더 현실적인 단계를 잡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방사성 원소인 라듐(Ra)과 폴로늄(Po)을 발견해 오늘날 원자력 시대를 연 마리 퀴리 박사를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로 꼽았다. 우리들에겐 퀴리부인으로 더 친숙하다.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뚫고 나갈 수 있는 의지를 지녔고, 자신의 삶 전체를 연구에 내건 분이죠. 이런 분들이 비단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많이 나오는 나라가 정말 강한 나라, 비전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