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복지 황금률' 깨져…증세, 구조개혁 갈림길

서울 종로구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최근 우리나라 복지 지출이 늘어나면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이른바 '복지 황금률(Golden rule)'이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복지 황금률이란 국민부담률과 복지지출간의 격차로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부담과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수준의 균형을 보여주는 기준이다. 이미 복지제도가 보편화된 선진국들의 사례에서 두 격차가 적어도 15%포인트는 유지돼야 안정적인 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국가부채 증가 없이 복지 제도를 운용하기 위해 향후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글로벌 사회복지지출 특징과 시사점'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4.6%,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9.7%로 두 지표간 격차가 14.9%로 집계됐다.

2007년 글로벌금융위기 이전 17.7%였던 이 비중은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 감세정책 등의 영향으로 7년간 2.8%포인트 좁혀져 기준점인 15%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주요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저부담, 저복지' 구조다.

각종 세금,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2%보다 9.6%포인트 낮다. GDP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9.7%로 OECD 평균인 21.1%보다 11.4%포인트 낮다. OECD 국가 중 복지지출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국가는 7%대인 멕시코가 유일하다.

그동안 복지 확대는 국민 부담을 늘려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견해와 달리 복지지출 확대가 분배구조 개선을 통해 성장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5년 159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하위 20% 소득계층의 소득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하면 향후 5년간 성장률이 0.38%포인트 확대됐다. 반면 상위 20% 소득계층 소득 비중이 1%포인트 오를 경우 성장률은 같은 기간 0.08%포인트 하락했다. 복지지출 확대에 따른 소득불평등 감소가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분석이다.

또한 일부 연구결과에 따르면 복지지출 확대는 빈곤율을 낮추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도 나타났다.

안정적 복지지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증세 등을 통해 국민부담률을 높이면서 인구, 경제상황에 맞게 지출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한은은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제도 개혁으로 90년대 이후 정부부채 비율이 감소한 반면 일본과 남유럽 국가들은 '저부담 고복지' 구조로 바뀌면서 국가부채가 대폭 늘었고 재정건정성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향후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증세와 지출구조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 복지 혜택을 늘리기 위해선 국민부담이 그만큼 더 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 주요 대선 주자들이 '저부담, 저복지'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현재 국민부담률 수준으로는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도입 초기 단계"라며 "현재 복지제도가 유지되더라도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국가부채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행 세입구조가 유지될 경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40%에서 151.8%로 치솟는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향후 복지재원 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기업 법인세 비과세·감면 등을 줄여 실효세율을 높이고 고소득자 대상 소득세와 상속세 증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후에도 재원이 부족할 경우 법인세 명목세율을 22%에서 25%로 높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에는 찬성하지만 소득세 인상 방안은 유보적 입장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받고 법인세 명목세율도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다.

반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행정개혁과 산하기관 구조조정을 통해 절약된 예산을 저소득층 복지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정책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