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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귀신의 집'의 추억

기자수첩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입력 : 2017.04.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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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그 얘기 들었어? 학교 후문 옆에 큰 집 있지? 거기 귀신이 산대."

운동장 철봉에 매달려 한참을 놀다 등나무 그늘에 앉아 쉬던 중이었다. 소문에 빠삭한 친구 하나가 굉장한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우리 오빠가 그러는데 거기 엄청 무서운 사람 집이래. 근데 사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대. 오빠가 축구하다가 공이 넘어갔는데 바로 공이 다시 돌아왔대. 누가 공을 던져준 거지. 근데 아무도 사람을 못봤대."

"꺄아아" 공이 되돌아왔는데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에 열 살쯤 된 여자아이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소문은 무성했다. 나만 빼고 모든 아이들이 '귀신의 집'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는 홍콩할매 귀신이 살고, 해가 지면 빨간 마스크를 한 여자가 아이들을 잡아간다던 1990년대 초, 국딩(국민학생)들에게 귀신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집으로 뛰어들어와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엄마 엄마! 학교 옆에 귀신이 사는 집이 있대!" 엄마는 얘가 무슨 소리를 하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 박정희라고 알아? 옛날에 독재자였대. 그 사람 딸이 거기 사는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대"라는 말을 듣고는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어른들은 괜히 그 집 앞을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다. 독재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 시절 그 집은 이야기 속 귀신의 집이 실체를 띠고 나타난 놀이거리였다. 어른들 말을 들을 리 없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학교 담벼락에 매달려 집안을 기웃거리고, 하굣길이면 대문이 열려 안이 들여다보이지는 않을까 괜한 기대에 높은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정성에도 불구하고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문 열린 대문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귀신의 집은 어린 시절 기억 너머로 잊혀졌다.


그토록 궁금했던 대문은 10여년이 지나 열렸다. 귀신의 집에 살던 사람은 대통령이 돼 집을 떠났다. 문 닫힌 집에 살던 대통령은 청와대에 가서는 청와대 문을 걸어 잠궜다. 그녀를 뽑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하는 일이 궁금해 담벼락에 매달려 묻고 또 물었지만 알 수 없었다. 300여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은 그 날의 행적조차도. 문 닫힌 집은 대통령 자체였다.

그 대통령이 지난 17일 재판에 넘겨졌다. 그녀가 걸어 잠근 문을 법정에서는 열 수 있을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학교를 다니는 조카들은 내가 '귀신의 집'이라 부르던 집을 '대통령 집'이라 부른다. 아이들에게 이 집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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