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농부들 트럼프에 뿔났다…"제조업만 챙기나"

지난해 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미국 농부들이 그의 반무역 정책을 걱정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협정에서 탈퇴하고 중국과 멕시코를 상대로 보호무역 공세를 벼르면서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서다.

캔자스, 아이오와 등은 미국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으로 '팜벨트'(farm belt)라고 불린다. 보수성향이 강한 이들 지역은 공화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캔자스주의 경우 1964년 대선 이후 줄곧 지난 대선처럼 공화당을 전폭 지지했다.

미국 농산물 수출입액 추이(Exports가 수출, 단위: 십억달러)/자료=미국 농무부

하지만 최근 팜벨트 분위기는 트럼프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농업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캔자수주는 TPP 협정으로 농산물 수출을 늘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트럼프는 비준만 남은 협정에서 발을 뺐다. 그는 멕시코를 표적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을 추진하고 중국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보호무역을 벼르고 있다. 팜벨트에서는 멕시코나 중국이 보복에 나서 주요 농산물 수출길이 막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팜벨트에선 트럼프가 '러스트벨트'(rust belt)만 너무 신경 쓴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러스트벨트는 오하이오, 미시간 등 과거 제조업 기반으로 미국 경제의 호황을 주도했던 지역을 말한다. 지금은 미국 제조업이 쇠퇴해 녹(러스트)이 슨 지역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 부흥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강력한 보호무역을 예고한 것도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러스트벨트 역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기반이 됐지만 지지 열기가 팜벨트에 비할 게 못 됐다. 러스트벨트는 대선에서 보통 경합주(스윙스테이트)에 속하는데 이번엔 트럼프간 간신히 우위를 점했다. 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팜벨트에선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공화당 내에서도 팜벨트 인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캔자스주 출신인 공화당의 팻 로버츠 미국 상원 농업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농부들의 이익보다 산업 스윙스테이트(러스트벨트)를 더 챙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버트 라이시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에게 "철을 먹을 수는 없다"고 비꼬았다.

FT는 최근 캔자스주에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처음 보궐선거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지적했다. 캔자스주 제4지구 연방 하원의원이던 마이크 폼페오가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되면서 빈 자리를 채우는 선거에서 공화당의 론 에스테스 후보가 이겼지만 득표율 차가 7%포인트에 그쳤던 것이다. 지난 11월 미국 대선 및 의회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오 국장은 같은 곳에서 각각 31%포인트, 27%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도 팜벨트를 옥죄고 있다. 미국 최대 농업단체인 미국농업협회(AFBF)의 지피 듀발 회장은 일부 지역의 경우 농장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불법 체류자라고 지적했다. 불법 체류자는 트럼프 행정부 반이민 정책의 표적이다.

미국 5대 농산물 수출국 수출액 추이(단위: 십억달러)/자료: 미국 농무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멕시코는 미국과 나프타 재협상에서 미국의 농산물 수출을 지렛대 삼아 반격할 태세다. 멕시코 정치권에서는 이미 미국산 옥수수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이 일어났고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브라질 등지로부터 농산물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농무장관을 지낸 톰 빌색은 "트럼프 행정부의 나프타 위협이 부지불식간에 멕시코시장을 유럽연합(EU)이나 뉴질랜드에 열어젖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실질적으로 시골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