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출장서 돌아온 최태원 회장, '도시바 자극할라 함구'

26일 김포국제공항 비즈니스 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왼쪽)/사진=남형도 기자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전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던 최태원 SK (155,500원 ▼1,300 -0.83%)그룹 회장이 2박3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26일 귀국했지만 출장성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일본에서 도시바 인수전 관련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을 감안해 자극하지 않으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전용기를 타고 김포국제공항 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 도착한 최 회장은 도시바 인수전 진전이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 현장에 다녀온 거고 아직 일본 밖에 안 가서 전체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긴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바 인수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최 회장은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다. 언론인 여러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최 회장은 24일 오후 2시 김포국제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전을 이끌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 인수전 관련 질문에도 "다녀와서 얘기하겠다. 가서 현장을 보겠다"고 짧게 답하기만 했다.

최 회장이 도시바 인수전 관련해 말을 아끼는 것은 도시바 경영진과 일본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최 회장과 일본 출장을 마치고 이날 함께 귀국한 박정호 SK텔레콤 (50,100원 ▼600 -1.18%) 사장은 "일본에서 도시바 인수전 관련 한국 기사를 다 번역해 보고 있다"며 인수전 상황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를 밝혔다.

이어 박 사장은 "미디어가 관심 가져주시는 것도 좋지만 일본이 도시바를 매각하는 것에 대해 자극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언론 보도의) 톤을 마치 (도시바를) 점령한다 이런 것보다는 어떻게 보면 잘되서 윈윈하는 쪽으로 (해주는 것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최 회장은 일본에서 머문 2박3일 동안 도시바 경영진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 메모리를 생산하는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에 투자와 고용 승계 등을 약속하는 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단순히 기업을 돈 주고 사는 것보다 좀 더 나은 개념에서 생각해보도록 접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일본 일정 이외에 추가로 미국과 중국을 방문해 도시바 인수를 위한 행보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해외출장이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바 인수전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보면 지난달 말 1차 입찰 결과 SK하이닉스와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 미국 브로드컴, 미국 웨스턴디지털(WD) 등이 유력 인수후보로 떠올랐다. 다음달 2차 입찰을 거쳐 도시바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전망이다.

현재 상황은 SK하이닉스에 유리하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인수금액 면에서는 1차 입찰 때 3조엔(약 31조원)을 써냈다고 전해지는 대만 훙하이에 밀리는 상황이다. 도시바와 협력 관계 측면에서는 미국 웨스턴디지털에 비해 불리하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공장에 투자하는 등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게다가 중국 등으로의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일본 정부가 도시바 인수를 위해 미국 사모펀드와 손잡을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관민펀드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가 컨소시엄을 이뤄 다음달 2차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일본을 전격 방문하는 등 행보에 나서면서 경쟁사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도시바에 독점교섭권을 요구하고 있는 WD의 스티브 밀리건 최고경영자(CEO)는 25일 "도시바가 현재의 위기를 탈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도시바 측에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