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100일…'과학기술계 홀대' 심화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DB

“예견된 재앙의 서막.”
트럼프 정부가 지난 3월 의회에 제출한 62페이지 분량의 ‘2018년 예산제안서’를 분석한 과학기술계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과학 분야에서는 승자가 거의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29일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과학기술계 평가는 야박하다. ‘과학기술 홀대’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R&D 삭감 칼바람=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 예산안을 살펴보면 에너지·제조·기후변화 관련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폭이 가장 컸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따르면 주요 R&D 지원 부처 중 하나인 에너지부(DOE)와 국립보건원(NIH)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DOE 예산은 전년 대비 5.6%(17억 달러) 줄었다. 특히 DOE의 ‘ARPA-E 프로그램’ 등의 폐지는 영향이 클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ARPA-E는 민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고위험·고수익 R&D 프로젝트의 기술개발 초기 자금을 지원하고 이후 민간 기업의 추가 투자나 기술 사업화를 유도하는 사업이다. NIH 예산도 58억 달러(약 6조 5000억원)가 삭감됐다. 이는 NIH 전체 예산의 18%에 달한다.

미국 제조업 발전에 기반이 돼왔던 ‘제조확대 파트너십’(MEP)은 폐지됐다. 트럼프는 기업의 기술개발·생산·제조협업 등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몫’이라는 입장을 고수, 제도 폐지를 일찍부터 예고해왔다. MEP를 관리해 온 국립표준연구소(NIST) 측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NIST 관계자는 “미국 혁신을 위한 추진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산업계는 “트럼프 예산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스마트팩토리 등으로 전환하는 전세계 기술 혁신 트렌드와 멀어져 미국 제조업 혁신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번 예산안은 의회에서 민주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용석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글로벌정책본부 연구위원은 “이번 예산안에 대해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 공화당 의원도 동조하고 있다”며 “의회가 예산 심의·의결 권한을 독점하는 미국 정치체제 특성상 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 예산안은 일부 조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신 행정부의 첫 예산안인 탓에 전면 수정보단 상당부분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변화 R&D 직격탄=특히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거부감을 표시해온 환경 R&D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쏟아낸 트럼프는 이번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을 대폭 깎았다.

온실가스 감축 주무부처였던 환경보호청(EPA) 및 각 부처 소관 기후변화 관련 프로그램 예산이 삭감됐다. EPA의 경우 1970년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26억 달러가 삭감됐다. 전년대비 31.4%가 감소한 것. EPA 인력의 19%에 해당하는 3200명이 정리해고 위기에 놓였다. 이 때문에 공공 부문 일자리 축소에 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015년 8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발표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안인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기, 전자제품의 고효율성을 인증하는 프로그램 ‘에너지스타’ 등 50여개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오바마 유산 청산 작업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전체 예산은 전년 대비 0.8%(2억 달러) 감액 수준에 그쳤지만 기후변화 해석을 위한 ‘지구연구 프로그램’ 등 관련 R&D 지원은 종료됐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 탓에 앞으로 글로벌 이슈로서 기후변화 중요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지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전은진 녹색기술센터 선임연구원은 “단기 혹은 중기로는 불확실성이 높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파리 협정에 미국이 참여하게 된 의의를 흔히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의 참여에 두고 있지만, 이들이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최대농업국가이기도 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OSTP 디렉터 공석 장기화=미국 대통령의 과학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 디렉터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누가 맡을 지 조차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OSTP 디렉터 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OSTP는 인터넷 사용권한, 에볼라 창궐, 드론(소형무인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등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과기 정책에 대한 주요 자문을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만큼 미국 과학기술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장용석 박사는 “부시 전 대통령 때도 (OSTP 디렉터 자리가) 8개월 가량 공석인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결정될 테지만 이번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꽤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고, 부시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