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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아버지 자리가 휑한 창경원 사진

광화문 머니투데이 배성민 부장 |입력 : 2017.05.02 05:15|조회 : 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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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바랜 앨범을 꺼내들어 어릴적 창경원(창경궁이 아닌 동물이 가득했던 창경원이다) 가족 사진을 봤다. 뭔가 휑했다. 아버지가 사진에서 빠져 있었다.

누구는 황금 연휴라 하고 누구는 ‘못 쉬는데 무슨~’이라거나 ‘(일자리 못 구해)어제도 쉬었고, 오늘도 내일도 쉰다’는 5월이 왔다. 실업 문제는 일단 코앞에 닥친 대선 주자들의 숙제로 넘겨놓고 노는 얘기만 하려 한다.


공항은 북적이고 도로는 꽉 막혔다. 그나마 준비한 사람들 얘기고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에 가 있는 사람들은 반나절 기다려 놀이기구를 하나 탔네 두 개 탔네 하면서 아이들의 투정을 듣고 있을지 모르는 계절이다.

‘여행 준비도 안 하고 당신은 뭐 했어’라는 배우자의 눈총 속에 ‘그래 밥이나 그럴 듯 하게 먹어보자’며 대가족들을 이끌고 식당에 가 있는 이들도 있다. 손자, 손녀를 오랜만에 본 듯한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가 귀엽지만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고, 돌아가는 길은 안 막히려나 걱정하는 이들, 게임하느라.카톡하느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들, 다 제각각이다.

‘아이들이랑 함께 여행요? 그냥 카드나 넘겨주고 편히 쉬는게 낫지’ 라고 손사래를 치는 경제력(?) 있는 어르신들도 있다. 자식들 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은퇴해서는 ‘(외)손자, 손녀 봐주느라’ 신경통이 도진다는 분들이다.


사진 속 아버지의 빈자리가 스친다. 30여년전 그때 아버지들은 직장에 나가느라, 가게를 지키느라 나들이를 함께 못 가셨다. 아버지가 함께 하면 어머니 자리가 빌테니 기꺼이 양보했다.

# <아버지의 편지 한통을 받았다. “내 몸은 그런대로 괜찮다. 단지 어깨가 자꾸 결리면서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구나. (중략) 아마 갈 날도 멀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까지 읽어내려간 나는 편지를 잠시 접어두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 방울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검은색 마고자에 남색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이다. 하지만 이 수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말고사를 치른뒤 배워, 시험에 잘 안 나오는 탓이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꼭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 하는.

중국 작가 주자청의 그 수필 첫 대목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아버지를 뵙지 못 했다. 그때 아버지의 뒷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대도시로 유학간 아들과 시골에서 온 아버지가 역에서 조우하는 내용이다.

초대를 못 받아 떠나지 못 했는지, 여유가 없어 떠날 엄두도 못 냈는지 주말 집근처 공원에는 누군가의 아버지들이 많았다. 끼리끼리 모여있지만 아버지들간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나 이제 가려고’, ‘벌써 가’ 정도가 고작이었다. 휴일 완구 상가에는 가족들을 이끌고 나온 아버지들로 북적였다. 꽤 비싼 장난감을 손에 들었다 ‘저게 더 재밌겠는데’ 하고 슬며시 내려놓는 이들이다.

모쪼록 황금같은 계절 5월에 가족 여행을 떠났거나 모임을 갖는다면 아버지의 자리를 비워두지 말자. 디카로 폰카로 인화도 않고 찍었다 지우는 가족사진 속 등장인물이 줄어간다.

창경원 사진 빈 자리의 아버지와 가끔 중국집에 갔었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데려가 ‘자장면 두그릇을 어른 한그릇, 아이들 몫 반그릇씩으로 나눠달라’던 아버지는 ‘나중에 먹겠다’며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먹고나면 배가 쑥 불러왔던 자장면 반그릇은 사실 한 그릇이 아니었을까. 사진에서도 빠져있지만 기억속에서도 흐릿한 존재. 떠올려 보려면 눈물 사이로 어른거리는, 그 뒷모습은 바로 아버지의 것이다.

머니투데이 배성민 문화부장
머니투데이 배성민 문화부장

배성민
배성민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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