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도, 남중국해도' 중국 뜻대로 끝난 아세안회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담이 열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위대가 '남중국해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은 손을 떼라'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미국 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AFP/뉴스1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정상회의는 아세안 회원국이 아닌 중국의 독무대였다. 북핵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주요 현안에서 중국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입김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지난달 30일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지난달 30일 최근 북한의 도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정상회의 하루 뒤에 나온 성명이다. 아세안은 이날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는 지역안보에 심각한 충격을 주고 있다"며 "한반도 긴장 국면 완화를 위해 북한과 관련 당사국이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상황을 악화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중국 측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성명에서 '관련 당사국'이 어느 나라인지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지만 최근 한반도에 핵 항공모함 칼빈슨함을 전개한 미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핵 문제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연일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이 동남아 지역에서의 세력을 등에 업고 미국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온다. 친중 인사인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 맞춰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이번 아세안 회의 의장국이었다.

아세안 회의가 끝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아시아 정상들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하며 북핵 문제 관련 협조를 요청한 것도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번 성명에서 주목할 것은 동남아 지역의 최대 안보현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서는 중국 측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만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세안 정상들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관련해 일부 지도자들이 표명한 우려에 주목한다"며 "관련 당사국들이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자제력을 보이면서 상황을 악화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다소 추상적인 수준의 성명만을 내놓았다.

당초 성명 초안에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국제중재 판결과 관련해 '법적·외교적 절차를 완전히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가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성명에는 중국이라는 국가명은 물론, 국제중재 판결이란 단어조차 전혀 담기지 않았다.

다음 아세안 정상회의는 오는 11월 열린다. 아세안 회원국은 필리핀을 비롯,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브루나이 등 10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