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법정에 선 '40년지기' 朴-崔…서로 눈도 안 마주쳐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 최순실 씨와 함께 재판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0년 넘게 인연을 이어 온 박근혜 전 대통령(65)과 최순실씨(61)가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특별한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최씨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형사대법정에 출석했다. 감색 바지정장 차림에 플라스틱 집게핀으로 평소와 같은 올림머리를 한 모습이었다. 다소 초췌한 모습에 부은 눈을 한 그는 긴장한 듯 굳은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나눈 뒤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이후 반대편의 검사들에게도 간단히 목례를 한 그는 정면을 응시했다.

이윽고 최씨가 법정에 들어섰다. 얇은 베이지색 코트 차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쪽으로 잠시 눈길을 주는 듯 했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이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경재 변호사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은 뒤로는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정면을 응시했다. 평소 다른 재판에 출석할 때와는 달리 힘이 없는 표정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박 전 대통령은 허리를 세운 자세로 정면만을 응시했다. 최씨는 종종 자세를 고쳐앉기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인사를 하거나 서로를 의식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중간 유 변호사가 종이컵에 따라준 물을 마시기도 했다. 잠시 위쪽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였다. 유 변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유 변호사가 무엇인가 설명하자 박 전 대통령이 살짝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나이와 직업 등 기본적인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시작하자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 쪽으로 살짝 몸을 돌렸다. 여전히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무직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주소와 본적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도 낮은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

반면 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재판부의 질문에 답했다. 울먹이는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재판부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재차 대답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공소사실 요지를 설명했고 변호인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은 모두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에게 "변호인 입장과 마찬가지냐"고 묻자 그는 "예. 변호인 입장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추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보라"는 질문에는 "추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최씨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재판부가 "공소사실과 관련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보라"고 하자 "이 재판장에 40여년 동안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이 나오시게 해 너무 많은 죄인인 것 같다"며 "박 전 대통령은 절대 뇌물이나 이런 것으로 나라를 움직이거나 각 기업에 그런 일을 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씨는 울먹이면서 두서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씨는 특히 "이 재판이 정말 진정하게 박 전 대통령이 허물 벗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나라를 위해 여태까지 했던 대통령으로 남도록 해줬으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된 150석 규모의 대법정은 재판이 시작되기 30여분 전부터 가득 찼다. 취재진과 일반 방청객들이 뒤섞여 다소 소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법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정 안에 10명이 넘는 방호원 등을 배치했지만 재판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됐다.

3시간 남짓 진행된 재판은 오후 1시 쯤 끝났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 쪽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법정 밖으로 빠져나갔다. 최씨는 1분 여의 시차를 두고 퇴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