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기본소득제, 소득별 지원해야 불평등 완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더라도 보편적 소득제는 오히려 불평등을 키울 뿐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25일 '기본소득제가 소득재분배와 노동공급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소득에 따라 지원을 달리하는 방식이 불평등 완화에 효과적"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한경연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기본소득제의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설계 방식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소득제는 크게 소득별로 지원을 달리하는 '음소득제'(NIT: Negative Income Tax)와 소득과 관계없이 지원하는 '보편적 소득제'(UBI: Univeral Basic Income)으로 나뉜다.

음소득제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제임스 토빈이 제안한 설계방식을 기준으로 삼았다. 밀턴, 토빈 방식 모두 면세점 소득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고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토빈 방식은 근로유인을 높이기 위해 기준소득 이상 가구에 세제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보편적 소득제는 미국 기업연구가 찰스 머레이와 스페인 정부에서 제안했던 방식을 적용했다. 머레이 방식은 21세 이상, 스페인은 18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중위소득의 절반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머레이 방식은 소득이 중위소득 이상이면 특별부과세를 적용한 후 지원하고, 스페인 방식은 모든 소득세를 폐지한 후 단일세제로 개편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분석 결과 프리드먼과 토빈의 음소득제를 도입할 경우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0은 완전평등, 1은 완전불평등한 상태)는 각각 3.8%, 0.9% 감소해 소득불평등이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머레이와 스페인의 보편적 소득제를 도입할 경우 지니계수는 각각 2.9%, 0.3% 증가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됐다.

노동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면 보편적 소득제가 음소득제보다 부작용이 컸다.

토빈의 음소득제는 노동 유인이 줄어들어 도입 전보다 비경제활동 인구(자발적 실업)가 약 5만명 늘어나고 실업자(비자발적 실업)은 약 5000명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프리드먼의 음소득제를 도입하면 비경제활동 인구가 약 44만명, 실업자은 약 2만1000명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머레이의 보편적 소득제를 도입할 경우 비경제활동인구는 약 152만명, 실업자는 약 5만5000명 증가하고, 스페인 방식 적용 시 비경제활동인구 약 152만명, 실업자는 약 6만명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도 노동의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소득재분배가 크게 개선될 수 있지만, 노동의 역유인 효과를 고려하면 소득재분배는 오히려 악화될 수 있고,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 경제성장 둔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원 마련 부담도 보편적 소득제가 음소득제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소요재원을 추정한 결과 스페인의 보편적 소득제가 341조459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머레이의 보편적 소득제(266조3665억원) △프리드먼의 음소득제(75조9157억원) △토빈의 음소득제(50조6105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가구별 지원금은 소득 1분위에 속하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프리드먼의 음소득제는 연간 1928만원, 토빈은 642만7000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머레이의 보편적 기본소득제의 경우 지원금은 연간 2534만원으로 음소득제보다 많았다. 스페인의 보편적 기본소득제는 단일세제를 부과하기 때문에 지원금 2930만원에서 세금(1016만7000원)을 제외한 순 지원금은 1913만3000원 수준이다.

이번 연구 배경에 대해 한경연 관계자는 "기본소득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흐름이 제도 도입을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돼 연구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