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만에 재도전…서경배 회장, '설화수' 들고 프랑스 간다

(왼쪽)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오른쪽)설화수 제품 및 태국에 진출한 설화수 매장/사진=머니투데이 DB

"몇 달 동안 한 개도 안 팔렸어요. 그냥 다 가져가세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뼈저린 경험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당시 태평양 기획조정실장이던 서 회장은 적자가 심각했던 '순정' 브랜드의 프랑스 사업을 철수하려고 출장길에 올랐는데 가는 곳마다 찬밥신세였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화장품 매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순정 제품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모레퍼시픽의 프랑스 진출기는 이렇게 실패담으로 끝났다. 1988년 현지 공장까지 매입해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시장조사가 어설펐던 탓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1995년 완전히 정리했다. 서 회장은 제품을 수거해 불태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해외시장에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값비싼 경험도 절감했다.

아모레퍼시픽이 20여년만에 '뷰티 본고장' 프랑스 시장에 재도전한다. K뷰티를 대표하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로 아시아와 미주에 이어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는 9월 프랑스 최대 백화점 체인 갤러리 라파예트 파리 본점(오스만점)에 설화수 단독 매장을 연다고 25일 밝혔다.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 입점은 물론 온라인몰에서도 동시에 제품 판매에 나선다.


◇'프랑스 굴욕' 22년만에 재도전…이번엔 '설화수'로 정면승부=아모레퍼시픽이 프랑스 시장에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내놓는 것은 1995년 순정(현지 브랜드 '순')을 철수한 지 22년만이다. 서 회장이 경영에 본격 나선 이후 1997년 향수사업 확장을 위해 프랑스 샤르트르에 공장을 세웠고, 2011년 럭셔리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도 인수했지만 기초화장품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를 비롯해 미주 시장에서 설화수,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 대표 브랜드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패 경험이 있는 유럽시장 진출은 유독 신중을 기했다. 'K뷰티' 인기를 발판삼아 일부 중소 화장품 브랜들이 ‘세포라’ 등 화장품 편집숍에 줄줄이 입점했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유럽 사업을 서두르지 않았다.

올 9월 설화수는 라파예트 백화점 본점 1층과 인터내셔널관 지하 1층에 각각 입점할 예정이다. 매장에 인삼, 자음단 등 설화수 제품 원료를 비롯해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도자기인 달항아리 등을 함께 전시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브랜드로 프랑스 고객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타깃은 30~40대 여성 고객이다.

◇'K뷰티' 관심많은 프랑스…"시장조사 충분, 이젠 때 왔다"=아모레퍼시픽은 프랑스 진출에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하는 등 준비 작업을 벌였다. 20여년 전 순정의 실패로 50억원 넘는 손해를 봤지만 이것이 해외사업의 기본 전략 밑거름이 된 것이다.

프랑스는 다른 국가에 비해 소비자들의 화장품 구매성향은 물론 'K뷰티'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시장이라고 아모레퍼시픽은 판단했다. 특히 소비자의 30% 이상이 'K뷰티' 제품 구입 경험이 있고 원료와 성분이 효과적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설화수의 동양적인 이미지에 현지 고객들이 많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관계자의 전언이다.

서 회장의 기대도 남다르다.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이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는 현지 시장조사와 마케팅 전략이 전무했다"며 "하지만 모든 준비를 마친 설화수는 프랑스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는 2004년 홍콩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중국,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베트남, 미국, 캐나다 등 세계 11개국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말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해외매출은 1조6968억원으로 이 중 681억원은 유럽(향수 등)에서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