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하려니 관련 법이 '뒤죽박죽'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부실채권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6.5.3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소각하는 문제가 새 정부의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올랐지만 이같은 '죽은 채권'을 금융회사가 언제까지 보관할 수 있는지 신용정보법 해석을 두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적용된 개정 신용정보법에서는 '죽은 채권'을 5년간만 보관하도록 하고 있지만 상법상 영업과 관련한 중요 문서는 10년간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용정보법이 개정됐어도 일부 금융회사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5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9800억원 규모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했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채권자가 돈 받을 권리를 소멸시효 기간 안에 행사하지 않아 채무자의 갚을 의무가 사라진 채권을 말한다. 국민은행이 지난 3월에 소각한 채권의 채무자는 10만명에 육박하는 9만7000명에 달해 금융회사 단일 소각 건으로는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한은행도 비슷한 시기에 4400억원 규모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했다. 대상 채무자는 1만9424명이었다. 두 은행만 합쳐도 올들어 소각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이 1조4200억원에 달하고 대상 채무자만 11만6424명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지난 3월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대규모로 소각한 이유는 개정된 신용정보법 때문이다.

개정된 신용정보법 20조2항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5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2016년 4월 이전까지만 해도 영구적으로 보관이 가능했다. 하지만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는 10년까지 보관하도록 법이 개정됐고 이어 올해 4월부터는 그 기간이 5년 단축됐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지난 3월 보관기간이 5년이 넘는 채권을 일괄적으로 소각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는 보관기간이 5년이 넘어도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종전대로 보유하고 있다. 개정된 신용정보법 20조2항의 예외항목을 두고 금융회사마다 해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예외항목에는 '다른 법률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보관기간 5년을 넘겨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른 법률로 지목되는 상법 33조는 영업에 관한 중요한 서류는 10년간 보관해야 한다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어 신용정보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기간 빚을 상환하지 않은 채무자에 대한 정보는 '영업상 중요한 서류'가 될 수 있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개정된 신용정보법이 시행된지 몇 달 되지 않아 관련 판례나 유권해석이 없다 보니 은행별로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언제까지 보관할 수 있는지 판단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멸시효 완성 채권이나 소멸시효가 임박한 채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정작 관련 법령조차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새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연체 채권을 소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도 보유 중인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장기 보유 중인 우리은행도 조만간 대규모로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EB하나은행 등은 분기별(3개월)로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