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기본소득제…한은 "재원마련 사회적 합의 필요"

지난해 3월 알바노조와 노동당 등은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등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삶의 안전망이 절실할 때라며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사진제공=뉴스1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우려로 최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가 주목받고 있다. 다만 기존 복지재원 규모를 고려할 때 상당한 재정부담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기본소득제 도입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8일 한국은행 이재호 국제종합팀 과장이 작성한 '주요국 기본소득 논의 동향'을 보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해 6월 주요국 기존 사회보장제도 재원으로 지급 가능한 연간 기본소득 금액, 연간 8000달러 기본소득 도입시 필요한 추가 재원 규모를 추정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을 제외한 기존 사회보장제도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 가능한 기본소득 금액이 연 2200달러(약 246만원)로 추정된다. 이는 핀란드(1만500달러), 스웨덴(1만100달러) 등 북유럽 국가의 1/4 수준에 못 미치는 규모다. 미국(6300달러), 일본(5700달러), 독일(8400달러)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적은 편이다.

비교대상 중 우리나라보다 기본소득 지급 가능액이 적은 곳은 멕시코(900달러), 터키(1700달러) 등 2개국뿐이다.

연간 8000달러(약 900만원) 기본소득 지급을 가정할 때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17%가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기준 국내 명목 GDP가 1564조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약 266조원이 더 필요한 셈이다.


반면 기존 사회보장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연간 1만달러 이상 지급이 가능한 핀란드, 스웨덴 등은 연간 8000달러 기본소득제 도입시 오히려 GDP 3~6% 규모의 재원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중은 10.4%(2016년 기준)로 회원국 평균(21%)의 절반 수준이다. 매년 복지 지출을 늘렸지만 아직은 선진국 수준에는 못 미치는 셈이다. 기본소득제 도입시 막대한 추가 재원이 더 필요한 이유다.


기본소득 재원확보를 위해서는 증세, 세출 조정이 불가피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번 도입되면 축소, 폐지가 어려운 복지제도 특성상 근본적인 재원 마련 없이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재정 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특히 고소득자에게 기본소득 지급시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악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위스는 지난해 6월 매월 성인 2500프랑, 어린이 625프랑 지급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투표자의 76.9%가 반대했다. 기존 복지제도 축소와 이민자 급증을 우려한 결과다.

핀란드는 실업급여가 저소득 일자리 급여보다 높아 구직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 대응책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 중이다. 올해 1월부터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매월 세금을 제외한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제공할 예정이다. 과거 한정된 지역에서 실시한 실험과 달리 정부 주도의 전국적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한은은 기본소득제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 과장은 "현재까지의 기본소득 실험에 따르면 일부 긍정적 효과와 함께 한계점도 나타나 효과를 속단하기 어렵다"며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 및 실행방안 등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연구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재원마련 어려움 등으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충분한 사전 논의가 중요하다"며 "기본소득 이외에도 기존 사회안전망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검토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