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유럽, 美 의존 안 돼…우리 운명은 우리 손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유세에서 연설한 뒤 맥주잔을 들어 올리고 있다./AFPBBNews=뉴스1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럽이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독일 뮌헨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유세에서 "내가 지난 며칠간 경험한 바로는 우리가 다른 이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며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또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완료되면 영국 없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영국은 물론 러시아 등 다른 이웃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겠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날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첫 유럽 순방 중에 불거진 갈등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중에 파리 기후협약을 준수하라는 독일 등 6개국의 요구를 묵살했다. 파리 기후협약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절인 지난해 11월에 발효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약했다.


메르켈 총리는 G7 논의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며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 체제 내에 머물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다음주에 파리 기후협약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에 독일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그는 독일이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다며 "독일인들은 매우 매우 나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에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유럽 국가들이 GDP(국내총생산)의 2%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린다는 목표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지난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새 나토 본부 준공식에 참석해 9·11 테러 당시 무너진 월드트레이드센터(WTC) 빌딩 조각 위에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조약 5조를 새긴 기념물을 헌정했다. 하지만 미국의 집단방위조약 준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FT는 메르켈 총리의 이날 발언이 이같은 외부 환경에 맞서 보다 강력한 EU의 통합을 촉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최근 FT와 회견에서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EU 국가들이 가능한 한 더 가깝게 연대하도록 하는 게 독일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4선에 도전하는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계속 유럽의 통합을 강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