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비정규직 비중 20% 넘어…정규직 전환 압박에 '고심'

증권업계가 새 정부의 핵심정책인 비정규직 해소 기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계로 비정규직 축소 정책 동참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지만 증권업계는 일률적인 비정규직 축소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업무 특성상 은행권과 달리 대규모 계약직 채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31개 국내 증권사 직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4% 수준이다. 20개 외국계 증권사의 비정규직 비중 8.4%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높다.

대형 증권사 중에서는 메리츠종합금융증권의 비정규직 비중이 67%로 가장 높다. 전체 직원 10명 중 7명 가까이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비정규직(824명)이 정규직(412명)보다 2배 많다.

메리츠종금증권 고위 관계자는 "고액연봉을 받는 전문계약직 채용을 확대한 결과 비정규직 비중이 늘었다"며 "상당수 전문계약직들이 정규직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52%), 키움증권(43%), 한국투자증권(31%), KB증권(29%), 신한금융투자(26%), 대신증권(25%), NH투자증권(20%) 등 대형 증권사의 비정규직 비중도 외국계보다 높은 편이다.


중소형 증권사 가운데 한양(324%), 부국(197%), 케이프(157%), KTB(155%) 등도 비정규직 비중이 업계 최고수준이다. IBK기업은행 자회사인 IBK투자증권(70%), 유진(52%), HMC(42%), 동부(36%) 등도 업계 평균보다 높았다.

증권업계는 이처럼 높은 비정규직 비중으로 재계에 거세게 불고 있는 정규직 전환 움직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해소 방침에 SK, LG, CJ 등 대기업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이어 한국씨티, 농협, 하나, 국민, 우리 등 시중은행도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전문계약직 채용 비중이 높은 업무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수의 애널리스트를 채용해야 하는 리서치 부문, 주식·채권 매매 경력자가 필요한 리테일(개인고객)·홀세일(법인영업) 등 영업부문, IB(투자은행) 부문, 자산운용 부문 등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전문계약직 비중이 높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은 예금·대출 등 안정적 업무가 많아서 고연봉 계약직이 소수인 반면 주식·채권을 다루는 증권업은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만큼 전문적인 지식과 네트워크가 필요해 고액연봉 전문계약직이 상당수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상당수 직원들이 정규직과 달리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 많은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는 전문 계약직을 선호한다"며 "타업종에 비해 이직을 통해 몸값을 올리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이 비정규직을 비용절감과 해고 등 고용 유연성 제고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고액연봉 계약직 외에도 단기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사례가 여전하다"며 "무분별한 비정규직 확대를 제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