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값 못내 '강퇴'…스터디도 못하는 서러운 취준생

카공족끼리 서로 커피를 시키라고 눈치게임을 벌이는 '커피 룰렛'을 하기도 한다(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사진=한지연기자

#"돈 없어서 커피 안시키는거죠?" 3년차 취업준비생 A씨(30)는 지난달 스터디에서 '강퇴'당했다. 일주일에 세 번 카페에서 만나 상식을 외우고 자기소개서를 고치는 '스터디' 모임을 하던 중 커피값이 문제가 됐다. 5000원 커피값에 부담을 느껴 '마시고 싶지 않다', '속이 좋지 않다'며 주문을 미뤘던 A씨에게 카페 직원이 "1인 1음료를 시키지 않으면 자리를 오래 내주기 곤란하다"고 말했던 것. 다른 스터디원들은 A씨에게 "그 쪽 때문에 우리까지 눈치를 봐야하냐"며 "돈 없으면 스터디에 나오지말라"고 쏘아붙였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이 각종 비용에 허덕이고 있다. 취업 준비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교육 대신 취준생들끼리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을 찾는 취준생들이 많지만 이마저도 경제적 부담이 크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학원이나 취업준비기관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독취생'은 42만3000명이다. 같은 기간 전체 취준생은 65만6000명으로 이 중 절반이 넘는 64.5%가 독학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학원에 가기 보다 혼자 준비하면서 비용을 절약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취업 전문 사이트 사람인이 취준생 2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을 위한 사교육 비용은 월평균 36만원으로 조사됐다.


◇"오늘은 네가 시켜"…커피 주문 눈치보는 '커피 룰렛'
스터디원 사이에서는 다른 스터디원들이 커피시키길 바라며 눈치를 주는 '커피 룰렛'이 반복된다.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만큼 많은 취준생들이 카페를 공부 장소로 택하지만 커피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커피를 시키지 않아 스터디에서 강퇴당한 A씨는 "평일 내내 스터디를 하면 하루 약 5000원 커피값만 계산해도 일주일에 3만5000원, 한달이면 14만원"이라며 "돈 없어 학원을 못가 고육지책으로 스터디를 택했는데 스터디마저 눈치를 주느냐"며 울먹였다.

커피를 시키는 스터디원들 또한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다른 스터디원들이 커피를 안시키면 덩달아 카페 '진상' 취급을 받기 때문.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커피를 시키지 않아 취업 스터디를 그만뒀다는 B씨는 "나라고 돈이 많아 커피를 시키는 게 아니다"라며 "커피값은 일종의 공간 임대료인데 그마저도 내지 않으면 너무 이기적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카공족'이 카페에서 스터디 중이다(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사진=한지연기자

◇돈 없으면 스터디 내 정보공유도 제외…친목은 언감생심
취준생들은 돈이 없으면 스터디 모임 내에서 눈치를 받을 뿐 아니라 취업 정보 공유에서도 제외된다고 말했다.

2년차 취업준비생 C씨(29)는 "스터디 후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갈 때마다 돈이 없어 약속이 있다고 말하고 빠졌다"며 "나중에 보니 나만 빼고 저녁자리에서 오가는 정보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친목에서도 제외돼 모임 때마다 왕따가 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소득이 없는 취준생들의 경제적 차이는 대부분 가정환경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취업 준비 비용을 의식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자괴감과 피해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취준생의 경제적 기반 차이가 결과적으로도 취업 승패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며 "청년들이 금전적 형편에 관계없이 최소한의 안정된 기반에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대학과 정부 등 공공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