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가계부채, 절대 규모보다 증가 속도 너무 빨라 경제에 부담

가계부채 문제가 뜨거운 이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8월 중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으라고 ‘데드라인’을 정했다. 가계부채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가계부채가 1360조원 가까이 불어나는 동안 정부가 손을 놓았던 것도 아니다.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종합대책을 내놨다.


가계부채 담당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양적’ 관리보다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유지했다. 지난해 2월 은행권부터 시작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대표적인 ‘질적’ 규제다. ‘갚을 능력에 내에서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은 은행권을 시작으로 상호금융권까지 확대 적용됐지만 신규 대출 위주의 ‘질적’ 개선만으로는 ‘종합대책’이 되지 못했다. 도리어 업권별 규제 적용 시차로 은행에서 조인 대출이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지난 1년간 가계대출 증가율은 11.6%에 달해 부동산 광풍이 절정이던 2006년 11.8%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는 8월에 나올 ‘종합대책’이 지난 2년간 반년마다 나왔던 대책의 유사 버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계부채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IMF의 경고, 성장 정체된 채 가계부채 늘면 소비 위축=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부채 잔액은 지난 3월말 기준 1359조7000억원이다. 가계부채의 절대적인 수치만 놓고 ‘한국 경제의 뇌관’이라는 표현이 빗발친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해마다 증가해왔고 앞으로도 경제규모가 늘어나는 한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매년 사상 최대다. 금융당국도 절대적인 부채 규모가 아니라 증가액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위원회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이후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잡혔다”며 “올들어 가계대출 증가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해 가계부채 총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가계부채의 ‘절대량’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득실이다. 때로는 빚을 통해 경기 부양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도 2014년 8월 부동산 활성화를 통한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를 완화해 돈을 더 많이 빌려 집을 살 수 있도록 했다. 경기가 부진할 땐 빚을 늘려 소비 진작을 꾀하기도 한다.

문제는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와 비교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면 경기를 살리는 긍정적 효과는 아예 사라지고 소비를 위축시키는 짐이 된다는 점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계부채가 이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IMF는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가계소비가 0.06% 감소하게 된다”고 밝혔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실장은 “경제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경제구조에 소비를 늘리는 선순환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뜻”이라며 “부채가 소비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부채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규모 대비 부채비율 세계 8위..과도한 빚=실제로 한국의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2.8%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미국의 당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90%를 웃돌았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43개국 중 8위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미국과 영국, 일본보다도 높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1년 79.7%(13위)에서 2014년 84.2%(9위), 지난해 92.8%(8위)로 계속 상승세다. 전년 대비 상승 속도로 보면 지난해 세계 3위 수준이다. 그만큼 경제규모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가계부채 총액이 GDP 규모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공부채와 기업부채를 빼고 가계부채를 갚는데도 1년간 GDP로 부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구정한 금융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경제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뿐 아니라 증가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고 지적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53.4%를 나타냈다. 사용처가 사업용인지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는 소규모 자영업자대출까지 포함하면 이 비율이 178.9%로 뛴다. 2015년 말 일본과 미국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해도 각각 135%, 112%로 한국보다 낮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50%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는데 자영업자대출까지 포함하면 ‘갈 길’이 멀다.

◇금리 1%포인트 오르면 한계가구당 연이자 332만원 증가=흥미로운 사실은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꾸준한 상승세인데도 가계대출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말 기준 가계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은 0.28%로 기업대출 연체율 0.79% 대비 0.51%포인트 낮았다. 2013년 0.95%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내려왔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올랐는데도 연체율이 낮은 이유는 저금리 효과 덕분이다. 금리가 오르면 연체율은 언제든 치솟을 수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미간 기준금리가 같아짐에 따라 조만간 한국은행도 금리를 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상황이 뚜렷이 개선될 경우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 특임교수는 “국내 경기도 호조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미국이 이달에도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국내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심각히 고민할 것”이라며 “금리가 오르면 한계가구 중심으로 연체율이 반등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올라가면 한계가구가 감당해야 할 이자 부담이 연간 332만원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늘면 소비도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저금리를 경제상황 변화에도 고수할 수는 없어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