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실시간 속보

제7회 청년기업가대회 배너(~9/3)
세상과 잘 사는법, 내가 잘 사는법 - 네이버 법률

알파고·옥자…진화 혹은 멸종 갈림길 인류의 자세

[창간16주년 특집 좌담-포스트휴먼시대, 인간을 논하다] 인간중심주의 반성, 생태지향 기술 활용

폰트크기
기사공유
(왼쪽부터)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사진=김휘선 기자
(왼쪽부터)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사진=김휘선 기자
알파고·옥자…진화 혹은 멸종 갈림길 인류의 자세
'지구가 멈춘 날'이라는 유명한 50년대 영화(최근 리메이크)에서 외계인은 지구를 조사하고 결론을 내린다.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 오래전 이런 상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 종으로서 'AI'(인공지능)의 출현도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AI 등장 전에 우리의 과학기술은 'GMO'(유전자재조합 생물체) '옥자'(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등장하는 슈퍼돼지)도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을 초월한 또 다른 인간을 지향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기본 정신이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그리 과하지 않은 이유는 AI나 거대 GMO 등장과 무관하게 현 인류는 6번째 대멸종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멸종시기에는 항상 최상위 포식자들이 싹 사라졌다. 6번째 대멸종을 맞을 최상위 포식자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전문가들은 인류를 소멸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은 인간만이 아닌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입을 모은다. 근대 이성을 과시한 나머지 지구에서 인간이 벌인 그간의 참혹한 과거를 반성하고 여러 생물 종, 앞으로 우리가 만들 기계와 AI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가치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 종교, 철학 등 인간이 만든 여러 분야에서부터 그 연대가 시작돼야 하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본지 신문 창간 16주년을 맞아 근대 이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나온 포스트 휴머니즘과 AI 시대의 인류가 공존의 정신을 어떻게 키워가야 하는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석자]
고인석 교수(인하대학교 철학과)
우희종 학장(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전철 교수(한신대학교 신학과)
홍성욱 교수(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가나다순)
사회=신혜선 VIP뉴스부 겸 국제경제부 겸임부장


◇ 포스트 휴머니즘의 시작…"지구와 인간 존재 위협하는 인간중심주의 반성해야"

-사회=트랜스 휴머니즘 혹은 포스트 휴머니즘 개념을 간단히 공유하고 논의를 시작할까요.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홍성욱 교수(이하 홍)=19세기 후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르네상스 시기 정립된 휴머니즘의 '인간'은 부정됐습니다. 인간이 본질을 가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진화해서 만들어진 존재고, 앞으로도 진화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간이 바뀌었을 때 나타나는 존재가 뭐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고요. 육체·정신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 그 초월한 존재의 인간을 지향하는 철학이나 사회 운동을 트랜스 휴머니즘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휴머니즘을 통해 인간이 우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특히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반성에 이릅니다.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해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철학으로 탈바꿈시키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도 불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휴머니즘을 탈피하고 그 생각을 넘어서는 포스트 휴머니즘은 트랜스 휴머니즘보다 더 큰 개념으로 그런 반성에서 시작했습니다. 특히 서구를 기준으로 한 인간, 백인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동물, 자연환경, 생명 없는 그런 존재들, 일종의 로봇이나 사이보그, 이런 존재들까지 같이 고려하면서 인간이 덜 교만하고 덜 오만한 그런 철학적 입장을 견지하자는 게 포스트 휴머니즘의 정신입니다.

우희종 교수(이하 우)=포스트 휴머니즘은 인간 위주의 근대를 넘어 우리 인간이 지구의 한 구성원이자 생태 일부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점에서 포스트 휴머니즘 논의에서는 '근대적 인간중심을 벗어난다는 의미' 즉 근대적 이성, 데카르트식의 소위 학문적 이성을 조금 더 철저하게 반성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 이성에 철저한 비판이 없다면 지금 논의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은 다양한 근대적 사유 방식의 변형된 흐름일 테니까요. 물론 이것이 근대적 이성을 부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근대 사회는 이성 독재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감성을 다루는 분야인 예술만 해도 대학에서 예술 분야를 가르칠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박사 학위라는 이성의 검열을 통해야 하죠. 다빈치나 피카소가 살아 돌아와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교수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고인석 교수(이하 고)=포스트 휴머니즘은 인간 이후의 인간을 지향하는데 그 바탕에는 여전히 강한 이성, 과학기술 중심의 이성이 있습니다. 인간을 벗어난다고 하지만, 근대적 이성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회를 운영하고 여러 문제를 고민할 때 근대적 이성을 버리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전철 교수(이하 전)=종교적으로 포스트 휴머니즘은 대답이 아니라 중요한 화두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타인과 타자성의 문제를 두 세계대전 이후 주요하게 다룹니다. 생태계 위기와 도전 앞에서 '자연의 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방법론도 등장했죠. 이성과 합리성은 신앙적으로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성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근원적 비평이 포스트 휴머니즘에 있지요.

고=우 교수님이 '(과학적) 이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하셨는데 이는 과학철학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실제로 과학적 이성이 비판 없이 수용돼 온 측면도 있죠.

우=고전적 휴머니즘 근간이 된 이성은 소중한 인류의 자산입니다. 근대 이성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은 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보완할 알파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근대 이성을 넘어서는 포스트 휴먼 시대에 필요한 '알파'가 무엇일까. 이것이 '초월성이냐 감성이냐'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영역과의 융복합으로 도출될 수 있을 겁니다.

-사회=근대 이성, 즉 인간에 대한 반성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들려주시죠.

홍=20세기 중엽, 인류는 2차 세계 대전을 벌이고 홀로코스트를 행했죠. 원자폭탄도 투하하고. 60, 70년대 냉전이 최고조일 때 미국과 소련이 원자폭탄을 4만 개 이상 보유한 걸로 압니다. 그게 터지면 지구의 90% 이상의 생명체가 절멸할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을 이해하고 인간을 위해 과학을 발전시켰는데 노버트 위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의 영역에 이른, 생명체를 절멸시킬 힘'을 갖게 되는 데까지 오게 된 겁니다. CO2의 증가, 지구 온도의 증가, 생명 종의 감소…. 지구에 인구 자체도 너무 많이 늘었지만, 이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 종 자체가 지구를 위협할 뿐 아니라 동시에 종으로서 인간 존재가 위협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고=어느 생명윤리 모임에서 인간을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기생충'으로 비유하면서 그렇다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일동 웃음) 저는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구를 위해 인간이 사라지는 해법과 어떻게 해서든 인간이 살아남는 해법 가운데 택해야 한다면 저는 후자입니다. 저는 인간이 약한 종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해서 생각해야지, 그러므로 인간은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식의 접근엔 동의할 수 없어요. 신의 관점에서 '이제 너희는 사라져야겠다'고 해도 '나는 살고 싶다'고 고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권리니까요.

우=지구 관점에서 보면요, 특정 종이 한창 번창하다가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이 소멸해도 지구는 여전히 자율적으로 생생하게 굴러가죠. 인간을 지구생태계를 감히 파괴할 수 있는 기생충이라고 말하는 것도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논리학에서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가 생각나네요. 각각의 부분적 합리성을 취합했을 때 오히려 전체 그림이 망가지는 경우이지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통찰들은 무엇일까요. 이성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지만, 그것만이 전부인가 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우=이성적인 게 합리적인 건 맞지요. 하지만 합리적인 걸 곧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선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갇혀있는 근대적 틀 아닐까요. 원시인들도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살아남습니다만 과학적 학문적 이성이 있어서 가능했던 건 아니니까요. 논리적 사고와 더불어 본능적인 감성과 직관도 있고요. 합리적이란 말은 이성의 부분도 있지만, 감성이나 영성에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합리성은 종교적 측면부터 과학, 예술까지 여러 분야에서 논의가 돼야 합니다. 휴머니즘이라는 말을 유지하면서도 굳이 생태적이란 말을 쓰는 건 인간 위주의 이성의 영역만이 아닌 생태계 모든 생명체나 사물과 가장 적절한 관계 형성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 AI가 가져올 미래…"기술과 사회의 균형있는 발전 고민해야"

-사회=포스트 휴머니즘은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닌데도 생각보다 대중적 논의가 일어나고 있어요. 알파고 영향 아니었나 싶고요. '인간 이후 인간은 어떻게 존재할지' 막연한 두려움도 큰 거 같습니다.

고=포스트 휴머니즘의 배경 한편에는 컴퓨터 사이언스, AI(인공지능) 연구 활성화가 있죠. 20세기 초 튜링머신의 개념부터입니다. 더불어 인간이 생명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다는 희망까지. 두 과학기술의 성과를 결합해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형성된 거 같습니다. 한국에선 '알파고'가 불을 붙였고요.

우=알파고 여파는 조금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전자계산기를 생각해봐요. 몇 천 원짜리 전자계산기가 다루는 숫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그 전자계산기를 보고 경악했던가요? 그런데 바둑을 잘 두는 알파고에 우리는 왜 경악하는 걸까요? 전자계산기가 인간의 수치 능력을 극대화한 기능이라면 알파고도 유사한 논리구조인, 질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가진 한계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는 겁니다. 바둑에서 놀란 이유는 최소한 바둑은 인간의 고유 능력 내지는 단순 수치계산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일 겁니다.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섰다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을 규정하는 건 지능만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통합적 존재 안에 더 담아야 할 감성, 영성 이런 부분이 있죠. 그것에 근거해 전개될 상상의 영역,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 합의가 인류 고통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기독교 일각에서는 알파고의 등장을 21세기 바벨탑 사건으로도 해석합니다. 신을 떠난 인간중심주의가 지니는 파괴적 측면, 인간보다 강력한 지능의 등장에 대한 불안감이죠. 그러나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 모두를 위한 기술로 긍정적으로 전환된다면 이러한 우울한 전망은 극복될 수 있을 겁니다. 알파고는 신과 인간, 인간과 기술,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새롭게 상상하게 합니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존 폴킹혼 교수는 '현실이 매우 다층적인 차원으로 중첩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AI 발전 덕분에 인간의 본질과 그 미래를 질문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사진=김휘선 기자
(왼쪽부터)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사진=김휘선 기자
-사회=질문을 단순화해 볼게요. AI를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인간보다 진화된 존재로 보는 게 맞는지요.

우=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간의 기계화가 진행되죠. 문제는 AI가 'SI'(슈퍼 인텔리전스)가 되고, 나름대로 자율적이고 자신들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존재가 되는 시점인 특이점, 즉 기계가 인간이 되는 지점에서는 인간과 다른 종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홍=MIT에 휴 허라는 의수 공학자가 있어요. 사고로 자기 다리 잃고 의족을 했는데, 그 의족이 너무 불편해 지능형 의족 개발에 나섰죠. 그 연구팀은 사고로 허벅지부터 다리 하나를 잃은 무용수를 다시 춤추게 했죠. 트랜스 휴먼이나 포스트 휴먼은 이런 영역에서부터 올 거 같습니다. 선천적으로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에게 머리에 안테나를 달아 색을 소리로 대신 인식하게 하는 장치나 앞 못 보는 사람을 위해서 다른 형태의 감각기관 이용해 보게 하는 장치 같은 거. 눈을 뜨게 하는 게 아니라 시각을 대신할 수 있게 다른 감각기관을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죠. 이런 분야에서 사이보그 화가 우선 진행될 거 같아요. 공각기동대 실사 영화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죠? '강한 손으로 갈아 끼우라'는 옥외 광고. 부작용이 없고 손의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다면 가능하죠.

우=안경이 없으면 못 보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엔 놀라지 않아요. 그런데 홍 교수님이 든 예에선 왜 놀랄까요. 차이는 하나에요. 인간의 영역은 흉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이나 우리가 안 보이던 걸 보이게 해줘도 여전히 사물은 사물이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 사회가 과학 기술 속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고=학생들에게 "너희가 (필기) 노트보다 똑똑해야지" 라고 한 적 있어요. 뭘 질문하면 학생들이 다 노트를 들여다보니까. (일동 웃음) 그랬더니 한 학생이 학기 말 소감에 자기가 정말 노트보다 똑똑한지 반성이 됐다고 썼더라고요. 두 분 교수님 말씀하신 취지에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저는 상황을 구분하고 싶습니다. 맨몸 승부의 상황과 인공물에 의한 증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황은 다르니까요. 외물의 도움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다 보니까 어떤 의미에서 맨몸이 약화하는 효과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최근 거론되는 '전문가 무시' 현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여요. 사람들이 전문가에게 '인터넷 뒤지면 다 있는데 잘난 척 말라'라거나 '나도 다 있다'고 합니다. 일리 있지만, 한편으론 위험해 보입니다. 이것은 인지과학에서 나온 확장된 마음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생체와 인공물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도 걸려 있어요. 물리·화학적 커뮤니케이션은 세밀하게 될 수 있어도 철학에서 제기된 '의미' 같은 문제도 과연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홍=기술개발과 사회 수용을 비교해볼게요. 계산기라는 편리한 물건이 있는데도, 아직도 시험은 머리로 풀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깨지 못하고 있어요. 사림 뇌에 무엇을 쑤셔 넣는 걸 바탕으로만 시험을 보는 시스템은 기술이나 다른 사회 변화와 비교할 때 제자리거든요. 반대로 어떤 기술은 규제가 안 된 채로 앞으로 나가고 있죠. 포스트 휴먼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많은 논의는 단순히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발을 맞춰서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고=존 서얼의 '중국어방 논변'(AI의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의 관계가 인간의 뇌와 마음과 관계와 같다는 사상을 비판하기 위해 제시된 논변) 같은 철학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기계는 기능처리는 해도 의미를 깨닫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많은 예견 중 과학적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것들 혹은 불가능하거나 뚜렷한 한계를 지닌 프로젝트도 있죠. 인간 증강, '오그멘테이션'(인간 능력 강화, human augmentation) 등의 한계도 잘 따져봐야 할 겁니다. 어디까지 가능한 지도 중요하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를 봐야죠. 솔직히 알파고 보면서 든 생각 하나가 '바둑이 처음부터 승부게임이었나' 하는 의문이었어요. 놀자고 두는 거고, 만나자고 두는 거고, 그래서 두다 말아도 괜찮은 건데. 마치 바둑이 지적 높이를 재는 그런 대표 장면이 돼 기계가 이기느냐 인간이 이기느냐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의아했어요. 지능에는 굉장히 여러 측면이 있는데 제가 이해하는 지능은 감성, 도덕 판단 등을 포함하는 인지작용의 전 스펙트럼입니다.

-사회=AI가 인간을 도와주는 역할로 출발하더라도 분야나 목적에 따라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거나 천천히 가야 한다 등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또 AI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도 다를 수 있고요.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전=포스트 휴머니즘을 기술문명의 성찰과 인간 성숙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삶의 향상('라이프 인핸싱' Life-Enhancing)을 개인의 생명 연장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이는 건강한 방향이 아닙니다. 지능의 진화도 계산능력의 진화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찬송가 301장에 '사랑 없는 거리'라는 표현이 나와요. 첨단 인공지능이 미래의 거리를 뒤덮어도 그 거리에 사랑이 없다면 이는 유토피아가 아닐 것입니다. 문명의 미래에 대한 모색은 소중하지만, 그 방향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떠한 기술적 사회적 윤리적 방향성을 취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거겠죠. 저는 종교적으로 '영적 신경망'(spiritual neural network)이라는 개념을 주목합니다. 생명과 과학기술의 사회성, 이타성, 연대성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매우 필요하며 미래에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홍=일본에서 애완 로봇('아이보')에 노인들이 큰 애착을 보였습니다. 누가 봐도 생명체가 없는데, 노인들은 로봇 기능이 멈추자 오래 키우던 개가 죽은 것처럼 운다는 겁니다. 미국에는 청소기('롬바')가 있어요. 사람들이 롬바를 너무 사랑합니다. 깨끗하게 해주니까. 심지어 어떤 여성은 가끔 롬바에 쉬라고 자기가 청소를 한답니다. 이성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죠? 미래사회에서는 더 잦아질 겁니다. 윤리학자들은 이런 애착이 잘못된 거다, 안 된다,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인공물에 대해 애착을 왜 갖느냐입니다. 지능형 로봇들이 많아지면서 사학자나 심리학자들의 역할도 중요해질 겁니다. 인간과 기계가 맺는 관계에 변화가 올 테니까요.

우=인공 반려 동물에 대해서 고장 났다고 슬퍼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놀랍습니다. 생명체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죠. 인공물이지만 정말 나에게 위안을 줬기 때문에 고장 나면 슬퍼하는 게 이상할 게 없어요. 이런 면에서 인간 중심적 생각을 사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인공 강아지가 제 역할에 충실한 것이듯이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 대해 사회나 제도가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와 그것을 개인이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는 다를 겁니다.

◇ '옥자' 현실화 우려…"생태지향적 관점에서 기술 활용해야"

-사회=AI는 말 그대로 인간의 뇌(구조)를 모방한 겁니다. 인간 방식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풀고 배우고 감정을 폭발한다면 인간과 교감하지 못할 일도 아니죠. 그래서 우려도 나오는 거일 테고요.

▶홍=초지능, 인간의 일반 지능을 뛰어넘거나 혹은 그 일반 지능까지 도달한 것을 말하죠. 저는 좀 먼 미래라고 봅니다. 2045년을 예측한 이들이 있는데, 2070~2090년 정도는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전에, 얼마 전 인간 뇌세포를 이식해 사람 뇌와 흡사한 뇌를 가진 염소를 만든 사건부터 봅시다. 그 존재는 실험실 밖으로 안 나왔지만 어떻게 봐야 하나요? 그런 존재에 대한 보호도 달라지겠죠? 철학자 다니엘 데닛은 "자의식이 별거 아니다. 뉴런이 굉장히 복잡해지다 보면 자의식이 생긴다"고 얘기하죠.

전=AI가 자의식을 갖는 것,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유사한 구현이 가능하겠지만 완벽한 자의식의 탄생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고=기술의 미래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술은 인간의 산물이지만, 왜 이걸 만들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가능합니다. AI를 만들고, 몸에 적용하고, 로봇을 만들고, 그것을 사회 시스템에 적용하면서 만일 그런 것들을 만든 목적을 잊어버리면 문제일 겁니다.

전=포스트 휴먼을 단순한 사조로만 보지 말고 우리 인간이 구축했던 관점들에 대한 성찰적 비평으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오늘날 타자, 동물, 생명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특히 종교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에 새로운 통찰들을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세의 도전 앞에서 종교가 인간의 미래를 잘 진단하고 지혜로운 길을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홍=청년 문제, 재벌, 노인 소외, 입시지옥, 사드나 북핵 문제, 일상의 고민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우리 사고의 크기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넓게 늘여서 생각하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출산율 감소를 걱정하지만, 인구의 변화로 볼 때 인구 증가가 갖고 올 재앙을 걱정해야 합니다. 20세기 초 20억 명이던 인구가 곧 80억 명이 됩니다. 2100년엔 110억~120억 명이 될 거로 예상하는데 식량 공급은 포화상태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적 목축 GMO 발전이 정당화됩니다. 심각한 일 아닌가요?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 사진=김휘선 기자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 사진=김휘선 기자
우=근대적 이성과 맞닿은 근대적 욕망도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 욕망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그래서 이 신자유주의적인 욕망이 과학기술과 맞닿아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죠. 우리가 염려해야 할 건 통제되지 않은 인간이나 인간 욕망에 대한 찬양입니다. 이미 동물 분야에선 시작됐습니다. 인간을 위한 유전적 변형은 이미 가능해요. '트랜스 애니멀'이 나오겠죠. 식물과 곤충에 먼저 적용해 GMO나 'LMO'(유전자 변형생물체)를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트랜스 휴머니즘, 포스트 휴머니즘이 아니라 이미 구체적으로 시작된 변화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유전자과학에 바탕을 둔 합성생물학이에요. 어떻게 보면 AI보다 더 충격을 줄 수 있는 건데요.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유기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죠.

홍=맞아요. 일반적 기술개발보다 합성생물학 AI는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지구에는 미생물이 많죠. 인간이 그로 인해 병들고 죽기도 했지만 인간과 같이 진화했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존재는 인간과 함께 진화한 존재가 아니어서 어떨지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나노 입자는 자연에서 인간과 함께 진화한 입자가 아니어서 피부를 뚫고 들어가죠. 초지능 발전이 위험한 이유는 인간 진화에서 발전한 연대나 공감 같은 본성이 없어서입니다. 자기 보전에 대한 본능이 강해도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무척 위험한 것이죠.

-사회=포스트 휴머니즘의 먼 미래조차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술 활용에 대한 경각심에서 시작해야 하겠네요. 자본, 국가, 과학(자) 등 실제로 제도를 행하는 권력에 제언하는 말씀을 듣고 토론을 정리하겠습니다.

고=AI는 스스로 학습해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진짜 주체성과 가짜 주체성이 헷갈릴 수 있습니다. AI 기술의 함의와 위력을 고려할 때 AI 기술을 최대한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합리적 통제 가능성 안에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할 거로 봅니다.

전=트랜스 휴머니즘이 개인의 생명 연장에만 주목한다면 거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생명의 연장'보다는 '생명의 공존', '영혼의 불멸'보다는 '영원한 생명'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이 점에서 포스트 휴먼 시대를 종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포스트 휴먼의 키워드는 생명의 연대성과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생물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흥미롭게도 생명과 사랑이 총체적이며 시스템적인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합성생물학 시대입니다. 지금처럼 양극화된 시대에 과연 과학기술이,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트랜스 휴먼과 포스트 휴먼 시대를 약속한다 해도 현 사회구조문화에 벗어날 수 없다면 위험할 수밖에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가치에 근거해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전제하면서 새로운 과학기술을 현장에 접목했으면 합니다. 이 합의에는 당연히 근대 개념의 인간중심이 아닌 좀 더 생태 지향적이고 다른 모든 생명체와 하나라는 관점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홍=과학과 종교의 연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주려는 분야고 과학은 세상에 대해서 사실을 얘기해주죠. 이성을 가진,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돌아볼 수 있으니 교정이 가능한 겁니다. 여러 분야에서 힘을 합쳐서 개별 주장의 힘을 더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취했으면 합니다.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