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에 굴복당한 IT강국…랜섬웨어 천국되나

# 지난달 12일 유럽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확산된 ‘워나크라이’ 랜섬웨어 공격. 순식간에 전세계 159여개 국가에서 50만대의 컴퓨터를 감염시켰다. 하지만 정작 해커집단이 갈취한 비트코인 금액은 1억6400만원에 그쳤다. 반면 지난 10일 국내 중소 웹호스팅업체 ‘인터넷나야나’(이하 나야나)를 감염시킨 ‘에레버스’ 랜섬웨어 공격자는 나흘 만에 13억원 상당의 비트코인 지급 약속을 받았다. 해커가 이번 공격에서 감염시킨 서버는 153대에 불과하다. 랜섬웨어 제작자 입장에서 워나크라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인 공격이었던 셈.


◇나야나는 왜 해커요구에 굴복했나?=나야나는 15일 4억원 상당을 해커들에게 송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해커로부터 추가적인 복호화 키를 받는대로 2, 3차 송금을 통해 나머지 9억원도 입금한다는 계획이다. 해커가 나야나를 공격한 지 불과 5일 만의 일이다.


나야나측은 “피해를 입은 고객들의 홈페이지 정상화를 위해선 해커와의 협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며 “해커에게 복호화 암호키를 받는 것 외에는 고객들의 데이터를 복구할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번 공격을 통해 나야나측이 위탁 관리하는 고객사들의 홈페이지 3400여곳이 수일째 열리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수사당국 및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기술 도움을 받고 있지만 백업서버마저 감염된 터라 기술적 복구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고객 피해 최소화를 위해 해커와의 금전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나야나측의 하소연이다.

◇“韓 랜섬웨어 천국될 것” 우려= 나야나의 행동에 대해 일부 동정론도 있다.하지만 상당수 보안 당국과 전문가들은 범죄집단으로 간주되는 해커들과 몸값 지불 협상 시도 자체가 최악의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자칫 전세계 랜섬웨어 제작자들에게 한국 기업들에 대한 공격의 빌미만 제공해줬다는 우려다.

보안 업계의 한 관계자는 "13억원에 달하는 협상금액은 전세계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큰 금액"이라며 “한국 업체는 랜섬웨어 공격을 당하면 거액을 제공할 것이라는 오해가 전 세계 해커들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해외에서도 수십년 동안 랜섬웨어 공격이 이어졌지만 이번 경우처럼 공개적으로 해커의 요구에 응한 사례는 많지 않다. 수사기관 및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커와의 협상에 나선 것 자체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해커와 협상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정부 당국에는 없지만 도의적으로 범죄자와의 협상은 옳지 않다”며 “해커의 요구에 응하면 제2, 제3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아쉬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랜섬웨어 유사 피해가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해커와의 랜섬웨어 협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안업계의 한 전문가는 “테러범과의 무협상 원칙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처럼 사이버 공격자들에 대한 대응 방안도 일정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사후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뿐 아니라 피해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인터넷진흥원은 랜섬웨어 암호키 복원 기술 개발에 대한 선행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랜섬웨어 공격은 악성코드를 침투시켜 이용자 컴퓨터의 주요 파일들을 강제 암호화한 뒤 이를 풀어주는 대가로 비트코인 등 금전을 요구하는 사이버 공격이다. 그동안 해커로부터 몸값을 내고 복호키를 받지 않으면 암호화된 파일을 복구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역공학 기법을 통해 랜섬웨어의 암호화 과정·키 생성과정을 분석해 기술적으로 외부에서 암호를 풀 기술적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것.

백기승 KISA 원장은 “랜섬웨어로 인한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업계와 협력해 정보 공유와 기술 연구를 추진한다”며 “랜섬웨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책임에 따른 보안 투자 확대와 이용자들의 기본적인 보안수칙 실천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