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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新문화인 보고서] ① 내 삶을 바꾼 ‘라이프 디자이너’들

<창간 16주년 특집> “내 길은 내가 알아서 간다”…돈키호테·노마드·덕후형 인간의 ‘반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박다해 기자, 구유나 기자 |입력 : 2017.06.20 05:54|조회 : 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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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 세대)가 의존하던 생존을 위한 의무적 ‘한 우물 파기’ 전략은 지금 시대에 퇴물로 취급받기 일쑤다.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던 부모 세대와 다른 세대들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대세를 좇지 않거나 취미와 직업을 분리하지 않거나 열정이나 끈기의 미학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는다. 기존의 규칙과 관습에서 성공의 답안을 찾지 않는 이들은 돈키호테처럼 엉뚱한 일에 과감히 뛰어들거나, 노마드(Nomad·유목민)처럼 이것저것 시도하거나 ‘덕후’처럼 한 가지에 전념한다. 자신의 삶을 ‘희생’이 아닌 ‘유희’의 관점에서 영위하는 혁신가들을 3회 시리즈를 통해 따라가 봤다.
'돈키호테'처럼 엉뚱한 일에 과감히 뛰어든 사람, '노마드'처럼 여러 분야에 도전하거나 '덕후'처럼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사람. 이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며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만들어간다./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돈키호테'처럼 엉뚱한 일에 과감히 뛰어든 사람, '노마드'처럼 여러 분야에 도전하거나 '덕후'처럼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사람. 이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며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만들어간다./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애니메이션이 한창 유행하던 2004년 이찬우(45) 작가는 당시 용어조차 생소한 피규어 분야에 뛰어들었다. 취미 정도로 익히던 이 분야에서 그는 독학으로 시작해 나이키를 포함해 NBA 슈퍼스타 등의 피규어를 제작하며 세계 정상의 피규어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전례가 없어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재미가 두려움을 제압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의 그는 탄생했다.

이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며 “늦게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일의 주제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했다.

한 시민이 3월17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린 피규어 전시회 'NBA 레전드전'을 관람하고 있다. 한국의 피규어 아티스트 그룹 '쿨레인 스튜디오(Coolrain Studio)'와 토이 기획사 '마인드 스타일(Mind Style)'과 협업해 미 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피규어로 만든 전시다. /사진=뉴시스
한 시민이 3월17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린 피규어 전시회 'NBA 레전드전'을 관람하고 있다. 한국의 피규어 아티스트 그룹 '쿨레인 스튜디오(Coolrain Studio)'와 토이 기획사 '마인드 스타일(Mind Style)'과 협업해 미 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피규어로 만든 전시다. /사진=뉴시스

전인미답의 길 ‘돈키호테형’…“사회적 성공 기준 벗어나 ‘최초’의 가치 획득”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새 길을 개척하는 전형적인 '돈키호테형'은 남녀를 불문한다. 한국 1세대 프로파일러 이수정(53) 범죄심리학자는 심리학 교수에 지원했다가 교정학과에 채용되면서 우연히 범죄 연구에 눈을 떴다. 이때부터 범죄자 연구에 몰입한 끝에 한국 최초의 ‘범죄자 분류 시스템’을 마련했고, 남성보다 더 섬세한 여성 범죄 연구가의 전례를 만들었다.

타이포그라피(활자조판) 분야에서 안상수(65)를 첫손으로 꼽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혁신으로 평가받는 ‘안상수체’를 만든 그는 파주에 학교까지 설립해 후배를 양성하며 비주류 예술의 대중화를 견인하고 있다.

‘남’의 시선에 맞춰 살아야 했던 전통적 방식의 삶은 대한민국 신(新) 문화인들에겐 구태일 뿐이다. 숨겨진 자신의 재능을 뒤늦게 발견한 그들은 그 재능이 사회적 성공 법칙에 어긋나더라도 ‘나’를 위해 투자한 뒤 새로운 성공 모델을 제시했다.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2차에서 3차 산업으로 넘어가면서 이미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사회적 가치가 거세게 바뀌는 시점에서, 특히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전통적인 직업의 정의는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3차 산업혁명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돈이나 권력이 아닌 내 삶의 행복을 위해 유목민(nomad)처럼 국내외에서 직장을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3차 산업혁명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돈이나 권력이 아닌 내 삶의 행복을 위해 유목민(nomad)처럼 국내외에서 직장을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하나보다 여러가지 ‘노마드형’…“행복한 길 찾아 다양한 사다리로”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삶의 행복’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열린 태도로 지향하는 ‘노마드(Nomad)형'도 돈키호테형 못지 않게 주목받고 있다. 노마드형은 한 가지 직업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직업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찾아 만족감을 느끼는 문화인이다.

‘열정은 쓰레기다’의 저자 스콧 애덤스는 이 책에서 “성공하려면 한 가지를 탁월하게 잘하는 것보다 두 가지를 잘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며 “기술과 관련해서는 종종 양이 질을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 국내 최초 여성로봇공학자들의 소셜 벤처 네트워크인 ‘걸스로봇’을 창업한 이진주(39) 대표는 노마드형의 전형이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삼성전자에서 첫 직장을 다닌 뒤 국회방송과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전공과 무관한 과학계에 ‘현재’ 몸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직업을 여러 번 바꾼 노마드이고, 제주와 서울, 대전, 포항을 떠돌아다니는 방랑객이며, 어느 한 분야에 소속되지 않은 경계인이에요.”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전하늘(29)씨도 마찬가지. 직업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며 꿈을 향해 다양한 사다리에 올라가라고 충고한다. 그는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2011년 편도 티켓을 끊어 싱가포르로 떠난 뒤 작은 헤드헌팅 업체에 취직해 1년 만에 억대 연봉자가 됐다. 그리고 다국적 IT 회사를 거쳐 현재 글로벌 제조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오타쿠'(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는 한때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이제는 '성덕'(성공한 덕후), 즉 내가 좋아하는 한 분야에 통달한 '행복한 전문가'를 뜻하기도 한다.
'오타쿠'(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는 한때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이제는 '성덕'(성공한 덕후), 즉 내가 좋아하는 한 분야에 통달한 '행복한 전문가'를 뜻하기도 한다.

‘재미’는 기본, ‘가치’는 필수 ‘덕후형’…“사회가 아닌 내 기준에 맞춘 행복의 확신”

덕후형은 한때 마니아 취향을 가진 ‘쓸데없는’ 문화인으로 폄하되기 일쑤였으나, 레드오션화한 전통적 직업의 한계 상황에선 되레 각광받는 인간형으로 거듭나고 있다. 물고기 연구에 몰입하며 ‘자칭 비주류 과학자’로 사는 황선도(54) 해양수산과학자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덕후라도) 융통성 있게 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한 분야를 죽도로 파라’ 식의 교과서 같은 모범 답안을 말해서 사람들이 그걸 따르다 죽도 밥도 안되는 모호한 상황에 부딪히는 게 현실이에요. 물고기에 관심이 있어 20년 넘게 하다 보니 그 분야를 조금 이해하게 됐고 경험이 쌓여 나름 전문가 소리를 듣는 거 아닐까요. 자기 수준에 맞게 약간 욕심도 버리고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일 수도 있어요. 덕후의 미덕은 그런 데서 나와요.”

한성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한 김태형(39)씨는 재학 3년 때 중퇴하고 한예종 연극원에 재입학했다. 올해 연극 연출 10년 차인 그는 RPG 게임 형식을 빌린 관객참여형 연극이나 국내 최초 즉흥 뮤지컬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형식과 장르에 도전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전도유망한 과학계 대신 예술계로 방향을 튼 배경에 대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확신, 잘 될 거라는 확신보다 지금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단순히 재미만으로 선택한 건 아니고 세상에 어떤 걸 이야기할 때 행복하고 즐거운지 들여다본 결과였어요. 또 하나는 그 일의 가치를 찾아내는 거예요. 연극이 유흥이나 잉여가 되지 않을 거란 자기 합리화를 갖기 위해서라도 ‘이 일이 의미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매일 찾아야 했어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으로 찾기 시작하면 곧 한계에 부딪히거든요. 아직도 이 일이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느끼니까 버텼고, 그렇게 계단식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돈키호테·노마드·덕후형 인간은 과거에는 '별종'으로 손가락질 받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사진=뉴스1
돈키호테·노마드·덕후형 인간은 과거에는 '별종'으로 손가락질 받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사진=뉴스1

과거엔 ‘별종’, 지금은 ‘신 문화인’…소수의 반란이 만든 성공 모델의 중심은 ‘나’

조직의 성공이 개인의 성공이 되는 시대가 지나면서 ‘우리’보다 ‘나’에 집중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과거 ‘별종’으로 취급받던 신 문화인들은 아직은 소수의 반란일지 모르지만, 성공의 좌표가 늘어날수록 다원화한 사회의 중추적 역할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돈키호테나 노마드, 덕후형 인간은 현상적으로 제각각으로 보이지만, 때론 두 유형이 섞이기도 하고 한 유형이 다른 유형으로 전이되기도 한다”면서 “확실한 건 기성세대의 전통적 가치관과 태도에 대한 거부를 통해 자신에 집중된 삶을 산다는 일관된 정서가 이들에겐 공통적으로 배어있다”고 설명했다.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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