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20년 만에 최악 상반기… 신뢰 잃은 OPEC

올초부터 현재까지 브렌트유 가격 추이./사진=파이낸셜타임스

국제유가가 21일(현지시간) 올 들어 20% 이상 급락하면서 20년 만에 최악의 상반기를 맞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의지에 대한 시장 신뢰가 줄어든 게 국제유가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이날 전일대비 3% 하락한 배럴당 44.22달러를 기록했다. 올 들어 처음으로 배럴당 45달러 아래를 하회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11월 이후 약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경신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3% 내려간 배럴당 42.13달러를 기록했다. 이 역시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다시 썼다.


국제유가는 2014년 배럴당 100달러선으로 치솟은 뒤 공급 과잉으로 반토막이 났다. 올초 이래 현재까지 20% 이상 급락하며 1997년 이후 최악의 상반기 성적을 기록 중이다. 브렌트유 가격은 이날 1월 기록한 고점보다 22% 낮아져 약세장에 들어섰다. WTI는 하루 전 약세장에 먼저 진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국제유가 매도세는 OPEC이 지난달 말 2018년 3월까지 일일 180만배럴 감산하는 것을 연장하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가속화됐다.

최근 리비아와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 감산 면제 대상국가의 원유 생산량이 증가세를 보인 게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리비아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지난 몇 달간 88만5000배럴 수준에 달한 데 이어 지난주엔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석유 재고량이 감소했지만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집계한 지난주 미국 석유 재고량은 250만배럴, 가솔린 재고량은 약 60만배럴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미국 셰일 업계가 생산량 확대 계획을 멈추거나 OPEC이 감산 확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 본다. 헤지펀드들은 연초에 유가 상승에 베팅했지만 최근 몇 주간에는 반대로 매도 포지션을 늘렸다.

게리 로스 피라에너지그룹 석유 책임자는 "시장이 몇 가지를 말하고 있다"며 미국 석유시추업체와 OPEC이 원유 생산을 더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OPEC 주요국은 감산 합의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이날 "새로운 결정을 하기 위한 논의 중에 있다"면서도 "이 조직에서 결정을 이루는 건 매우 어렵다"고 했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이번주 러시아와 유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OPEC 주요국이 라이벌 국가에게 시장 점유율을 뺏길까봐 감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본다. 밥 맥날리 라피디안그룹 사장은 "이들의 감산은 한심하게 불충분하다"며 "그들은 다가올 수급균형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