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A’, 우리의 미래를 사랑해

가끔 읽어나가는 것이 어려운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지나치다고 할 만큼 감정이입을 할 캐릭터를 만나는 순간. 네이버에서 최근 완결된 ‘여중생A’가 그랬다. 1990년대 경제 호황기에 서브컬처 문화가 생겨난 뒤 IMF를 지나고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2000년대. 중학생 장미래는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친구 없이 아이들의 서열 밑바닥에 있다. 그리고 가난하다. IMF로 시작된 오랜 불황은 가난을 보편적인 정서로 만들었고, 학교 안에서 위계의 기준은 더욱 촘촘해졌다.


‘여중생A’의 허5파6 작가는 이런 환경에서 여성 청소년이 겪는 폭력들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흑백인 장미래의 세계에서 컬러가 등장할 만큼 행복한 순간은 게임을 할 때뿐이고, 게임을 연결고리로 만나게 된 그와 친구들은 각자의 아픔과 고통을 지니고 산다. 장미래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이태양은 백합과 사귀고, 백합은 장미래가 이태양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사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태양이 학교폭력을 당한 동생으로 인해 친구가 없는 아이와 친구관계를 맺는 것을 반복하고, 백합이 가부장적인 환경 속에서 마치 꽃처럼 사랑받는 존재로 자라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있다. 마치 어떤 세대의 일기장처럼 느껴질 만큼, ‘여중생A’는 그 시절 10대의 일면들을 기록해나간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여성이자 청소년이 폭력의 대상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장미래를 비롯해 코스프레나 게임 커뮤니티 안에 있는 여성 청소년은 캐릭터 플레이를 하며 자신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또한 ‘아이피녀’ 사건으로 사이버 폭력을 당한 김유리처럼 언제든 사람들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여중생A’는 이것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 선악 구도로 다루지 않는다. 김유리는 일진이기도 했지만 사이버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장미래는 김유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그의 사연을 인터넷 소설로 연재하지만, 그 결과는 ‘아이피녀’ 사건을 만들었던 김현진에게 사이버폭력을 당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그들을 둘러싼 폭력은 다층적이고, 그 해결은 이른바 ‘사이다’식 서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장미래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일진 미화 소설을 쓰다 자신이 결국 사람들에게 폭력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치 지금의 일진 소재 작품들을 저격이라도 하듯 말한다. “착한 일진은 정의로운 조폭만큼 이상한 일이다.”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그것을 미화하던 장미래는, 성장하며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가 된다.

이 성장의 힘은 그가 빠져 있던 게임 속 세상 바깥에서, 여성들의 연대에 있었다. 장미래의 어두운 삶을 구원할 존재는 남자인 이태양처럼 보였지만, 그는 후반으로 갈수록 서사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여성들과 꿈을 나누고, 친구를 사귀면서 배우고, 자신의 롤모델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게 그가 현실에서 살아가며 성장할 토대를 만들면서 게임을 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사람들이 읽어줄 글을 쓰는 것, 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장미래는 게임 말고도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만 낙원을 찾아 헤맨 게 아니야. 아이들은 이미 저마다의 낙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여중생A’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낙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낙원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발붙이기 시작한다.

‘여중생A’가 완벽한 현실의 기록은 아니다. 이 작품은 폭력이 이뤄지는 기제들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는 반면, 가정폭력의 원인인 장미래의 아버지를 사고로 우연히 죽게 만든다. 이것은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미래의 현실은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해도 공권력이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장미래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판타지밖에 없다. 대신 ‘여중생A’는 모든 것이 가부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화에 반발한다. 장미래는 청소년 캐릭터가 홀로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아버지의 죽음 후 장미래와 엄마가 단둘만 남은 가정은 오히려 따뜻하고 안락하게 묘사된다. 또한 장미래가 아버지에게 당하는 학대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면서 독자가 지나치게 감정이입 하지 않도록 한다. 벗어날 수 없는 폭력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섬세함을 발휘하며 작품을 덮지 않고 앞으로, 장미래와 함께 나아가도록 한다. 이것은 ‘여중생A’가 거둔 중요한 성취다.


‘여중생A’ 연재 중에는 유달리 “미래야 사랑해” 같은 댓글이 쏟아졌다. 아마도 마치 지금, 또는 청소년기의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장미래를 바라봤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장미래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노랑, 분홍 머리를 한 현재희와 작가 진재현의 안내를 통해 미래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결혼을 바라는 현재희에게 “지금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현재희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며 미래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을 결심하며 자기 자신을 음침하고 벌을 받아 마땅할 아이로 생각하던 장미래는 그렇게 인생의 다음 챕터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어떤 세대에게 자신의 일기장 같았던 여중생을 응원하며, 넌 혼자가 아니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장미래처럼 정말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아직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옆의 차가운 손은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