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 성공 DNA…벤처창업 생태계로 이식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 이것이 그룹의 경영철학이다. 네이버와의 제휴도 그런 맥락이다. 금융과 IT가 결합된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는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미래에셋금융그룹 고위 관계자)


최근 미래에셋금융그룹 주력 자회사인 미래에셋대우가 네이버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맞교환 형태로 업무제휴에 나섰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DNA에서 기인한다는 설명이다.

박현주 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벤처기업을 대기업으로 일군 모험적 창업가란 깊은 정서적 교감 속에 이번 제휴를 성사시켰다는 후문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신사업 발굴에 협력키로 했는데 단순한 업무제휴를 넘어서는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다.

향후 양측이 새로운 서비스 개발과 신사업 진출을 시도할 뿐만 아니라 국내 벤처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고리를 구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다.

페이팔을 매각해 대박을 터뜨린 엘론 머스크, 피터 씨엘과 같은 창업가들이 끊임없이 스타트업(창업 벤처기업) 육성 및 투자로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며 실리콘밸리의 벤처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현상을 벤치마크 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 회장이 미래에셋그룹 창업 20주년을 맞아 성공한 창업가를 넘어 자신의 DNA를 이식한 벤처 창업의 판을 만드는 역할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동원증권 동료, 후배 등 8명과 함께 자본금 10억원 짜리 미래에셋캐피탈을 만든 후 20년 만에 자본금 13조60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금융그룹으로 키워 낸 금융업계에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성공 창업가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과거 20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소수의 편'에 서서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했다는 공통분모가 나온다.

◇"자산운용 엔진 삼아 증권·생명 양바퀴로 성장"=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그룹 성장의 모태다. 지금은 그룹 내 역할이나 무게감이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여전히 해외 진출 선봉장으로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캐나다 ETF(상장지수펀드) 운용사를 인수해 북미 시장에 진출하고 유럽에서도 운용사 매입을 타진 중이다. 자산운용업이 소수 인력으로도 외국 현지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란 판단에서다.

박 회장은 일찌감치 자산운용업을 성장산업으로 인식,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축으로 금융그룹의 얼개를 짰다. 그동안 운용사가 증권사나 은행의 하부에 놓여 있던 금융업계 서열구조와 거꾸로인 셈이다.

박 회장은 현상을 판단할 때 '본질'을 파악하려 애쓰고 최종 판단에 앞서 이를 단순화시켜 결론을 내리곤 했다. 박 회장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엔진으로 삼아 증권사와 생명사의 2개 바퀴로 굴러간다'는 경영 방침을 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그룹 성장 과정에서 본진과 첨병을 동시에 담당했다. 1998년 처음으로 뮤추얼펀드를 선보인 후 '최초'란 수식어가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늘 따라 붙었다. 1997년 국내 첫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시작으로 이듬해 국내 첫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가 데뷔했다. 이 펀드의 엄청난 성공으로 박현주 신화에 서막이 열렸다. 2001년 미래에셋디스커버리펀드와 인디펜던스펀드로 적립식 열풍을 주도했다.

2004년 12월 국내 최초 PEF(사모투자펀드)인 '미래에셋파트너스'를 출범했다. 2011년 세계 1위 골프공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를 인수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의 토종 사모펀드가 글로벌 1위 브랜드를 인수했다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2005년에는 국내 운용사의 해외법인이 직접 운용하는 해외펀드를 처음 선보였고 2006년에는 미래에셋상해타워를 인수하며 국내 첫 중국 본토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 관심을 모았다. 2012년에는 최초로 중국 합작운용사를 출범하는 등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포함해 미래애셋금융그룹은 15개국 27개 법인과 사무소를 운영하며 촘촘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고속성장한 조직 위상 걸맞는 관리도 필요해"=1세대 펀드매니저로 불리는 A씨는 "박 회장을 비롯한 미래에셋의 창업 공신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작은 변화의 흐름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판단 착오와 실수도 있었지만 이를 만회하는 기민함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고속 성장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성장 속도가 빠른 만큼 관성도 커 내부통제 기능이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와 지배구조가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미래에셋 초기 멤버였던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인사이트펀드 실패 사례를 보면 미래에셋그룹 위기는 성취욕과 자신감이 회사를 지배해 균형감을 상실했을 때"라며 "상호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고속성장에 길들여진 조직을 규모나 위상에 걸맞게 속도 조절하며 관리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