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패산터널 실패 '데자뷰' 우려

서울외곽순환도로 일산∼퇴계원 구간 사패산터널 입구 전경./사진=머니투데이DB

문재인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의 건설 여부를 ‘공론조사’로 결정하기로 한 것을 놓고 정책의 본질인 ‘신뢰(policy trust)’가 깨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두고 정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사업의 ‘데자뷰’라고 우려한다.


28일 국무조정실 등에 따르면 정부가 정책의사결정에 공론조사를 처음 도입한 것은 2003년 서울외곽순환도로 일산∼퇴계원 구간 사패산터널 건설사업이다.

서울외곽순환도로는 1996년 민자유치 대상사업으로 확정돼 2001년 6월 착공했다. 하지만 8차선 도로가 북한산을 관통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 사업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패산터널 공사 백지화’를 공약하고 당선되면서 새 국면에 접어든다. 참여정부는 대통령 공약인 백지화와 사회적 효용을 두고 저울질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해 결국 2003년 7월 29월 국무회의에서 ‘공론조사’ 추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론조사는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에 큰 부담으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공론화가 예상처럼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아 정부 스스로 ‘공론화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2003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공론조사를 추진했으나 양측 모두 설득에 실패해 공론화위원회 구성 자체가 불발됐다. 결국 노무현대통령이 당시 해인사에 머물던 조계종 종정 법정스님을 찾아 ‘담판’을 진 끝에 같은 해 12월24일 공사를 재개로 결론 났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하기도 했다.

‘도롱뇽 사건’으로 알려진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구간 건설사업 강행과 경인운하 민자사업 폐지도 비슷한 과정 끝에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 경인운하 민자사업 폐지는 현대건설과 수자원공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인 경인운하주식회사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360억원의 국가배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사업 ‘공론조사’도 앞선 사례와 유사하게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에너지정책의 특성상 고도의 전문성과 정책적 이해가 필요한 한 데 공론조사 과정이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공론화위원회 및 시민배심원단 구성부터 의사결정 과정, 결론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전 과정에서 ‘잡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오영석 동국대 행정경찰공공학 교수는 “공론화위원회, 시민배심원단 구성도 어렵지만 3개월 안에 결론을 내려 법제화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정부가 정치적 선언을 해놓고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는 “이 사안은 다수결로 결정할 내용이 아니다”라며 “그야말로 균형감각을 갖춘 사람들을 구성해야 하는데 절차적 타당성이 굉장히 세심하게 준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던 정부에 대한 신뢰 훼손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 공통의견이다. 정해진 규제와 절차를 준수해 진행 중인 사업을 새 정부가 소급해서 중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론화 결과도 차기 정부에서 뒤집어질 수 있으니 ‘5년 공사 중단 결정이 맞다’는 웃지 못할 반응도 나온다. 실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 격론 끝에 내놓은 권고안을 받아 산업통상자원부가 만든 사용후핵연료 처분 로드맵은 문재인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공약하면서 현재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이번 공론화가 선례가 된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과거 정부 정책과 어긋나는) 대통령 공약은 모두 공론화를 요구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