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 쏜 살수차, 고장에 지침도 안지켜

2015년 11월1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모습./사진=뉴스1

고 백남기 농민이 참여했던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 사용된 경찰 살수차가 노후화로 규정에 맞는 수압 조정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력운용 관련 살수차 운용지침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황도 발견됐다.

29일 백남기투쟁본부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판사 김한성)에 최근 제출한 청문감사보고서에 이같은 사실이 담겼다. 보고서에는 살수차가 쏜 물대포를 맞아 백씨가 쓰러졌을 당시 미흡했던 살수차 운용 상황이 나와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살수차는 압력 조절이 불가능한 노후 차량이었다. 살수차를 조작한 A 경장은 살수차 수리업체가 '수압을 3000rpm(펌프 분당 회전수) 이하로 맞추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으나 차량 노후화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다른 차량으로 교체를 권고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살수차를 수리할 때 수압은 3700~3800rpm 측정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내부 규정에 살수차 수압은 3000rpm으로 제한된다. 다만 사고 당시 실제 수압은 기록이 없다.

보고서에는 경찰이 집회 당시 살수차 운용에 실제 경장 2명만 투입한 사실이 적혀있다. 운용지침상 살수차 1대당 조작요원 3명을 편성해야 한다. 또 충분한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된 사실도 드러났다. 살수차를 운용한 A경장은 조작요원으로 투입되기 전 2015년 하반기 2~3회 살수차 교육을 받고 이틀간 실습한 것이 전부였다. A경장은 원래 행정팀 소속이었다.


경찰이 사고 당시 백씨가 쓰러진 이유를 '음주'로 추정한 사실도 이번 보고서로 알려졌다. 당시 살수차 안에서 물대포 세기 조절한 경장이 감찰 조사에서 "(백씨가)야간 음주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술한 기록이 남았다.

앞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경찰이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 등을 분석해 충분한 교육 없이 살수차를 운용하는 등 부실 관리를 주장했다. 백씨 유족은 경찰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이다.

민변은 "경찰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사건 당시 살수차를 담당했던 경찰관 중 한 명은 현장에 처음 나갔고 전날 살수차 운용지침을 숙지했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위협할 수 있는 살수차를 충분한 교육과 훈련 없이 운용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최초 살수 여부 보고가 무전이 아닌 스마트폰 메신저(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진행됐다"며 "살수차 운용에 관한 보고·관리체계가 제대로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경찰은 살수차 고장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해당 살수차는 구형이어서 수압을 3000rpm이하로 제한하는 장치 설치가 불가능했던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또 당시 살수차 운용요원이 '2800rpm을 넘어가면 차량 자체에 무리가 가고 흔들려 계기판을 보며 3000rpm 이하로 조작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행정팀 소속 경리계 직원이 살수차를 운용한 것 관련 경찰 관계자는 "해당 직원은 기동대 소속으로 경리와 살수차 운용업무를 겸직했다"며 "당시 살수차는 방향조정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또 사고 당일 살수차를 처음 조작안 요원이 있었다는 지적에 "당시 충남경찰청 소속 경장이 '야간집회'로는 처음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