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선언 30년'…아버지 노태우와 청중석의 아들딸

6월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29민주화선언 30주년 기념학술대회' 모습. 현수막 왼쪽 위편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돼 있다.

6.10 항쟁 30주년이냐 6.29선언 30주년이냐를 두고 여러 이견이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6.29 민주화 선언과 한국민주주의’ 학술대회(6.29민주화 선언 30주년 기념)가 열렸다. 한국정당학회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최의 행사에서 사실상의 호스트 역할을 하는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녀들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이 그들이다.

가벼운 옷차림의 노 관장은 행사장 청중석 가운데에서 대회 막바지까지 자리를 지켰고 주변에는 정장 차림의 딸도 함께였다. 노재헌 원장은 노재봉 전 국무총리, 이병기 전 국정원장, 김종인 전 의원,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등 아버지 시대의 총리, 장관들과 참모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네면서 학술대회 현장을 오갔다.

학술대회장 높은 곳에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흐릿하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6.29선언 현장의 모습이어서 아버지 노태우가 ㅎ학자들과 청중, 그리고 딸과 아들, 손녀를 지긋이 쳐다보는 모양새처럼도 읽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장기간 병석에 머물러 거동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30년이 지나 민주주의 이행 과정을 학술적으로 점검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던 것.

사진 왼쪽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씨.

실제로 노재헌 원장은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묻는 질문에 ‘특별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신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만 어머니가 아버지 병구완에 힘들어 하신다는 말을 덧붙여 가족들이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내비쳤다.

30년 전으로 시계추를 돌리면 항복과 결단 사이의 중간쯤 되는 지점의 6.29선언을 실제로 입밖에 꺼내 발표한 것은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당시 대선 후보, 같은해 대통령 당선)였다. 노태우 대표는 비장하게 6.29선언을 내놓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대선 후보와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6.29 선언의 반전(전두환 대통령의 ‘직선제와 김대중의 사면.복권 수용’)으로 노태우는 50년대 초 육사 시절부터 이어져온 동기생 전두환에 이은 2인자 딱지를 떼고 우뚝 선 1인자가 됐다. 하지만 3당 합당을 거친 뒤 YS(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이후 5 ~ 6공 비리 수사와 역사 바로세우기 등의 물결 속에 전두환과 노태우는 나란히 재판정에 섰고 수감되는 전직 대통령 신세가 됐다.

6.29선언이 있은지 30년째, 선언의 주인공인 노태우는 병석에 있고 대선에서의 경쟁자였던 YS와 DJ(김대중)은 대통령을 거친 뒤 생의 뒤안길로 떠났다. 이날 학술대회 토론자의 말대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환기의 인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자녀들도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노재헌 원장은 정계 입문을 시도했다 아버지의 구속 등으로 꿈을 접었고 노소영 관장은 남편인 최태원 SK회장과의 갈등 등 가정사의 어려움이 이어져 왔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6.29민주화 선언과 한국 민주화’, ‘외국에서 바라본 6.29 민주화 선언과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의 평가’ 등 다양한 주제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학술대회 막바지인 라운드테이블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6.29선언 이후 30년을 통합(consolidation)의 과정으로 본다며 민주화 이행과정(transitoin)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을 재평가(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송 교수 등의 평가가 있은 후 노소영 관장은 딸과 학술대회장을 떠났다. 노 관장 모녀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아트센터 나비'가 있는 SK그룹 사옥에 들어섰다. ‘저 분들은 그래서 어떻게 (평가)하자는 거에요?’ ‘아까 물어보지 그랬어.’ 학술대회 발표자 언급처럼 민주화로의 이행과 6.29선언 평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