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최순실 지시 적은 수첩, 땅 속에 숨겼다"

박헌영 K스포츠재단 전 과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최순실씨(61)의 지시 사항이 담긴 박헌영 전 K스포츠 과장의 업무 수첩이 공개됐다. 수첩에는 기업에서 돈을 받아내는 과정부터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최씨의 지시 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조작된 자료'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30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65)과 최씨의 재판에서 박 전 과장이 지난 3월 제출한 업무수첩 2권의 내용을 공개했다.

최씨의 변호인은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한참 지나고서야 수첩을 증거로 냈다"며 '조작된 자료'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지적에 박 전 과장은 "나를 보호할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 땅 속에 숨겼다"며 "3월이 돼서 증거로 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검찰에) 줬다"고 응수했다.

최씨 측은 또 수첩에 누가 지시를 했는지 이름도 적혀있지 않다고 지적했지만 박 전 과장은 "지시를 한 사람이 그 분(최씨) 한 분 뿐이라서 이름을 적을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과장은 수첩에는 지난해 최씨로부터 지시를 받은 내용이나 K스포츠재단·더블루K 회의 내용 등이 적혀있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공개한 수첩에는 가이드러너 사업과 관련해 '연구용역-SK에서 진행' '가이드러너 학교설립 제안→포스코' '아시안게임까지는 밀어주면 좋겠다' '비덱과 SK독일법인 통해 지불 정산되면 좋겠다'는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박 전 과장은 이에 대해 "최씨가 각종 체육사업을 진행하면서 SK·포스코 등에서 지원을 받으라고 지시한 증거"라고 했다. 또 "최씨가 'K스포츠재단이 운동선수를 독일에 보내면 훈련 비용을 비덱스포츠에 직접 보내라고 요구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비덱은 최씨가 독일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을 받는 회사다.

박 전 과장은 롯데 그룹에서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을 명목으로 K스포츠재단에 75억원을 추가 지원 받은 경위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박 전 과장은 최씨의 지시를 받고 인터넷 등에서 짜깁기해 예산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박 전 과장은 "금액에 맞게 짜라고 해서 주먹 구구로 만든 것"이라며 "(최 씨가) 별 뜻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만들라고 해서 예산안 만들다보니 K스포츠 재단에 쓸 예산인지, 더블루K에서 쓸 예산인지 몰라서 (지원 요청을 하는 예산안에) 주체가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박 전 과장은 급조한 기획안과 예산안을 롯데 측에 제안했고, 제안 다음날 75억원을 지원하겠다는 롯데 측의 연락을 받았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