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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쓸쓸한 죽음...세상에 그의 나라는 없었다

[송정렬의 Echo]

송정렬의 Echo 머니투데이 뉴욕=송정렬 특파원 |입력 : 2017.07.12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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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1일 경기도 한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흔두 살. 그는 왜 젊은 나이에 삶의 끈을 놓아야했을까. 그의 굴곡진 삶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그는 서울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2년 후 입양기관에선 그의 미국입양을 추진한다. 입양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첫 입양은 실패했고 다시 1년이 지나서야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여덟 살 때다.

성장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수차례 이런저런 범죄로 체포를 당하고, 약물중독에도 빠졌다. 미국은 2012년 미국에서 자랐지만 시민권이 없는 그를 출생지인 한국으로 추방했다. 한국을 떠난 지 무려 29년 만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시 버려졌다. 이후 지난 5년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한국 땅에서 한국말 한마디 못하는 그의 삶이 어땠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이 전한 필립 클레이(한국이름 김상필)씨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이 미국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죽음은 무국적 입양아들에 대한 야만적 추방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입양아권리캠페인(ARC)에 따르면 1940년대 이후 미국에 입양된 해외 입양아수는 35만 명에 달한다. 이중 시민권이 없이 성인이 된 입양아의 수는 3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무국적 입양아들의 비극은 미국이 입양아들의 시민권 획득여부를 양부모들에게 맡겨두면서 시작됐다. 일부 양부모들은 입양아들에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또 일부는 번거롭고 돈이 드는 서류작업으로 인해 입양아의 시민권 획득을 포기하기도 했다.

미 의회는 지난 2000년 미국 시민권자에 입양된 입양아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아 시민권법'(CCA)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이미 성인이 된 입양아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현재 미 의회에는 18세 이전에 입양된 사람에게는 입양시점과 상관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인 시민권법안’(ACA)이 제출돼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해 미 대선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무국적 입양아들의 추방공포만 커졌을 뿐이다.

무국적 입양아의 문제가 미국만의 책임일까. 우리 사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은 한때 세계 최대의 입양아수출국이었다. 1950년대부터 무려 11만 명의 아이들을 미국에 입양시켰다. 이중 1만8000명 가량의 시민권 취득여부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수십 년 전 떠나온 출신국으로 추방됐거나 추방위기에 직면한 수십 명의 무국적 입양아 중에서 한국 입양아들의 사례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동포 여러분의 자랑이 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기 전인 지난 1일 교민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다.

무국적 입양아들에겐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당당하고 품격 있는 나라가 없다. 자신을 낳아서 버린 나라와 자신을 길러서 버린 나라만 있을 뿐이다. 수십 년 만에 범죄자로 쫓겨난 그들이 기댈 곳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한 쓸쓸한 죽음...세상에 그의 나라는 없었다
이제라도 우리가 무국적 입양아들의 보호막 역할을 해야 한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미국의 추방에 ‘노’(No)라고 당당히 말하고, 무국적 입양아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국내로 추방돼 한계상황에 내몰린 이들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그게 그들의 아픔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이며, 인간에 대한 도리다. 또 품격있는 국가의 모습이다.

“아이일 때 난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다. 영어 배우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미국인이 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38년 만에 한국으로 추방된 한 무국적 입양인의 절규다. 이제 우리가 답할 때다.

송정렬
송정렬 songjr@mt.co.kr

절차탁마 대기만성(切磋琢磨 大器晩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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