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해법은 기업 살리기…세계는 '기업 감세 전쟁' 중

세계 주요국의 기업 감세 경쟁이 한창이다. 문재인 정부의 증세 움직임과 반대되는 행보다. 돈 많이 버는 대기업이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는 논리지만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역풍에 대한 우려를 피할 수 없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가 취합한 자료를 보면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추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 세계 법인세 실효세율은 2007년 평균 27%에서 올해 24%까지 줄곧 떨어졌다. 한국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주요 선진국의 법인세율도 같은 기간 똑같이 움직였다.


유럽연합(EU)의 법인세율은 지난 10년 사이 24%에서 22%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는 저성장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된 세계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로 세부담이 커지자 기업들의 법인세 저항이 커졌다.


미국에서는 '법인 자리바꿈'(corporate inversion)이라는 변칙이 성행했다. '법인 자리바꿈'은 외국 기업을 인수해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로 법인을 옮기는 걸 말한다. 미국의 기본 법인세율은 35%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편이다.

이런 가운데 애플을 비롯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있다. 해외 수익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도 35%의 법인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법인 자리바꿈을 막는 규제를 강화했지만 법인세율을 낮춰달라는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미국의 법인세율은 2005년 이후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인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재 35%인 법정 법인세율을 15%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공화당의 재정적자 우려를 감안해 15%까지는 아니라도 20% 초반에서 25% 수준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화당 1인 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법인세율을 20%로 낮추는 내용의 세제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20일(현지시간) 법인세율 인하를 비롯한 세제개혁안 논의가 합의에 임박했다고 밝혔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하고 설비투자와 임금인상을 유도하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했다. 재정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기업에만 세제혜택을 준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2차 소비세율 인상 시기를 미뤘을 뿐 여전히 당초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2014년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높인 아베 총리는 법인세 실효세율을 단계적으로 국제 표준인 25~30%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일본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아베 총리가 집권한 2012년 38%에서 올해 31%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일본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 행보가 더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본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환율전쟁에 대한 경계감이 커진 데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으로 인해 글로벌 수요가 미약해지면서 평가절하 효과도 약해졌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기업 감세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영국은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의 유럽 본부 역할을 했는데 브렉시트로 기업들의 이탈 우려가 커지자 친기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달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 감세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법인세율은 지난 10년간 30%에서 19%로 10%포인트 넘게 낮아졌다.

유럽 대륙 주요국들은 반대로 영국 이탈 조짐을 보이는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본격화할 태세다. 한 예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업감세와 부자감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4선에 도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법인세율 인하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