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정규직전환…재원조달·기존직원 반발 '산 넘어 산'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정혜윤 기자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일선 공공기관들이 혼란에 빠졌다. 소요재원 규모 및 확충방안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없어 결국 기존 직원들의 처우가 후퇴하고, 기관 자체의 경영 효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기관별 재정 여건과 고용 상황에 따라 정규직 전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방향성'만 제시하고 구체적 '방법론'은 없어 공공기관 인사 담당자들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에 따른 정책 방향이기에 공개적으로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전환 인원 파악·예산 규모 산정부터 난항=공공기관 인사담당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정규직 전환 범위 산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공약 이후 기간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정규직 전환 시뮬레이션은 수차례 검토했지만, 지난 20일 가이드라인에서는 파견·용역 근로자 등 간접고용직렬까지 전환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 고용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에 방문한 이후 우리 기관의 비정규직 전환 인원을 계산한 적이 있으나 용역직 근로자가 가이드라인에 들어가면서 기존 보고서는 쓸모가 없어졌다"며 "재차 TF를 꾸려 수시로 회의를 하며 자료를 변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차 정규직 전환의 범위를 기간제 19만명, 파견·용역 13만명으로 내놨지만 이는 검토 대상일 뿐이다. 이 중 몇명을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자회사 설립 후 채용으로 전환할지 구체적 수치를 밝힌 적이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관마다 채용 형태, 필요한 인력, 예산 운용의 여유 등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전환 비율을 강제할 수는 없다"며 "가이드라인은 방향성을 제시한 것일뿐, 구체적 전환 대상과 소요 예산 규모는 각 기관들이 자체 판단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8월말~9월초까지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 준정부기관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얼마 준다는 것도 명확히 안 나왔는데 정규직화 할 수 있는 범위를 제출하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먼저 확보 예산부터 제시해줘야 구체적 전환의 그림이 잡힐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존 직원들은 처우 후퇴 우려…노조는 침묵=재원 조달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정규직 충원은 결국 기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도 퍼지고 있다. 7000명 이상의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둔 한 공공기관은 향후 상당기간 동안 기존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우선 파견·용역직을 전환하면서 절감하는 관리비, 이윤 등을 처우개선 재원으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서울시, 광주시가 비정규직을 전환할 때 이 방식으로 일부 재원을 확보해 활용한 사례가 있다.

문제는 이렇게 확보할 수 있는 재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 특히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던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서울시나 광주시 사례 같은 비용절감 요소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용부가 단서로 단 것이 '기존 정규직의 연대'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재원 우려에 대해 "고용안정을 우선시하고 처우 개선은 후순위로 고려해 재정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라면서도 "이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도 함께 연대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복수노조를 둔 공공기관 관계자는 "일반 직원들은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만들 경우 자신들의 몫을 내놓는다는 점을 인식해서 개별적으로는 반대 의견이 상당하다"면서도 "정작 양대 노조에서는 조합원 숫자가 늘어나면 조합비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개별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리한 정규직 전환, 다음 정부에 '대못박기' 될 수도=정부 일각에서도 일괄적인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따른 무리한 공무원, 공기관 직원 증원이 결국 국민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 공공기관 인력을 늘린다는 게 반드시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며 "온라인 업무비중 증가 등으로 오프라인 기관들도 통폐합하며 효율성을 찾는 마당에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린다면 점검·단속 사례 등에 치중해 오히려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그 많은 숫자를 다 정규직화하면 다음 정부에 대못박기를 하는 꼴이 될 것"이라며 "처우는 높이되 정년은 유연하게 두는 별정직 형태로 고용해서 성과를 높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신규채용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며 "지금 정규직 전환에 소요될 비용 등을 고려하면 경영 효율성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