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몰이식 법인세 논의…재계, 쌓이는 불만에도 침묵모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헤이애덤스호텔에서 열린 '방미 참여 경제인단과의 차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정부 출범 두달여가 지나면서 재계와 경제단체가 깊은 침묵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법인세·소득세 인상 논의가 대표적이다.

1차적인 이유는 면세점 선정 등 전임 정부 시절 기업 관련 의혹에 대한 고강도 사정정국에 있다. 적폐 청산을 내세우는 정부 앞에서 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투자와 고용 확대로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을 지원하면서 애로도 호소하고 정책 지원도 이끌어내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게 재계의 상황 인식이다.


4대 그룹은 물론,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도 겉으로는 "정부 시책에 협력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당면현안을 말하지 못해 답답해 하는 모습이다. 지난 19~22일 국내 기업인 600여명이 참석한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도 법인세 인상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상위 1%의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게 딱지를 붙이는 여론몰이식 정책 추진도 재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재계 공통의 입장을 낼 수 있을 만한 사안을 일부 기업에 한정하면서 법인세 인상 문제가 삼성전자 (75,500원 ▼600 -0.79%)·현대차 (249,500원 ▲4,500 +1.84%) 등 몇몇 기업의 '외딴 문제'가 됐다.

한 재계 인사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정부에서 다른 기업에는 괜히 나서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숨통을 틀 조짐을 보이는 타이밍에 수면 아래에선 오히려 불만만 쌓이는 분위기다. 일자리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주최로 재계와의 자리가 마련돼 봐야 겉도는 얘기만 하다가 헤어지기 일쑤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말부터 보름에 한번꼴로 재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재계 애로사항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는 27,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회동을 앞두고도 이렇다할 기대감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한 중견기업 대표는 "정부의 법인세 인상 논의가 표적 증세라는 데 기업인치고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 다음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분위기에서 총대를 멜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말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부자증세라는 여론을 발판으로 초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지만 개인이 아닌 법인을 부자로 구분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법인세 인상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원 조달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