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실수→채권시장 붕괴…1994년 '악몽'에 노심초사

미국 기준금리 추이(단위: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ofAML)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은 가장 큰 걱정거리로 채권시장 붕괴 가능성을 꼽았다. 그다음으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실수 가능성을 지목했다. FRB의 실수가 채권시장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가지 공포는 따로 떼놓고 볼 수 없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24일(현지시간) 1994년 채권시장 붕괴의 기억이 FRB의 실수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공포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FRB는 199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인상했다. FRB는 미국 저축대부조합(S&L) 절반이 파산한 S&L사태에 대응해 1989년 3월 9.75%였던 금리를 1992년 9월 당시로선 사상 최저인 3%로 낮추고 동결 중이었다.

급격한 금리인상 여파로 채권시장은 1920년대 말 이후 최악의 붕괴를 경험했다. 특히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에 투자했던 이들이 직격탄을 맞아 어스킨캐피털 같은 헤지펀드가 무너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부촌인 오렌지카운티도 파산했다.

CNBC는 FRB의 이번 통화긴축이 어떤 결과를 낼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성장세가 여전히 미약하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사실상 없다는 이유에서다.


FRB뿐 아니라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도 섣불리 금리인상에 나섰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BOJ는 거품 붕괴에 맞서 1990년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BOJ는 통화완화 기조를 고수하다가 2000년 8월 물가 수준이 낮은 데도 돌연 긴축에 나섰고 일본은 2개월 뒤 침체에 빠졌다. 2006년에도 금리인상을 시도했지만 2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다시 금리를 낮춰야 했다. 그 사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으로 고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2010~2011년에 금리를 인상했다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을 확신할 수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저금리 정책에서 갑자기 발을 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피터 부크바 린제이그룹 수석 시장 애널리스트는 "금리를 낮추고 돈을 찍어내는 건 매우 쉽다"며 "모두들 그동안 파티를 즐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언제 끝낼지 결정하는 건 언제나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FRB에 따르면 미국 기업과 정부, 개인의 비금융부채는 올해 1분기 현재 47조5000억 달러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 비해 35%가량 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FRB가 경기부양을 위해 푼 저금리 자금을 끌어 쓴 결과다.

부크바는 '공짜점심'이란 없다며 이를 되돌릴 때는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FRB가 통화긴축 시기를 너무 미뤄서 위험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재닛 옐런 FRB 의장은 이런 우려 속에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전에 비해 강한 비둘기파(온건파) 성향을 드러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매우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통화긴축 속도를 조절할 여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퀸시 크로스비 프루덴셜파이낸셜 수석 시장 전략가는 FRB가 통화긴축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월가와 협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FRB는 이날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돌입한다. 이번 회의에서 큰 결정은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크리시나 구하 에버코어ISI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에 있는 한 FRB가 앞으로 몇 차례 회의에서도 큰 결정을 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CME그룹에 따르면 금리선물시장에서 본 FRB의 연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은 48%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