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공장서 22시간 작업, 특성화고 학생 뿔났다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추진위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에 '구의역 김군' 추모비 앞에서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활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10월 수원의 한 특성화고 3학년인 A군(19)은 같은 지역에 있는 한 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업체는 A군이 현장실습에 투입되자마자 베트남 현지공장으로 파견근무를 보냈다. A군과 사전 협의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A군은 베트남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많게는 22시간까지 노동에 시달렸다. A군은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결국 건강이 안 좋아진 A군은 올해 4월 일을 그만뒀다. A군이 나온 학교는 올해도 해당 업체로 현장실습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다.

반복되는 차별과 무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제2의 '구의역 김군'이나 '전주 콜센터 여고생' 사건을 막기 위해 전국 연합회를 구성했다.

26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특성화고 학생 50여명이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추진위원회' 활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학생들 스스로가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이 진행된 장소는 지난해 5월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모군(당시 19세)이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해 숨진 곳이다. 추진위는 기자회견에 앞서 김군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묵념을 했다.

올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환수군(19)은 "아는 친구 하나는 현장실습을 나간 업체에서 사전에 얘기 없던 주말 근무를 강요당하고 성적인 발언과 농담을 들어 힘들어 한다"며 "업무 실적도 나이와 대학 졸업 여부로 순위를 가리는 등 차별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업체들은 가족처럼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가정부를 찾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유한공업고에 재학 중인 이강혁군(18)도 "형이나 누나들 이야기를 들으면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돈을 적게 받는다고 한다"며 "그런 불합리함을 알리고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진위 목표는 9월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창립이다. 전국 516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마다 지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우선 올해 말까지 서울의 74개 특성화고 중 절반 이상에 지부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학생 고충 신고를 위한 24시간 신고 상담 센터인 '특성화고 119' 운영과 학생 요구를 담은 '청소년 노동보호법' 제정 운동도 펼친다.

추진위는 오는 9월 23일 정식 창립대회를 열어 특성화고 학생과 현장 실습생이 겪는 노동 현실을 알릴 예정이다. 11월 3일 학생의 날에는 전국 특성화고 학생들의 '10만 권리선언'을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