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공포 현실화…영국 경제 살얼음판

지난 6월 5일 영국 버윅셔 켈소에 위치한 한 석유설비 부품제조공장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메이 총리는 6월 8일 실시된 조기총선을 통해 브렉시트 협상을 위한 정치적 주도권을<br> 얻으려 시도했지만 의석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정치적 혼란만 초래했다. /AFPBBNews=뉴스1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짙은 그림자가 영국 경제를 뒤덮었다. 글로벌 기업과 고급 인력들의 영국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기 전망도 악화일로다.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영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영국 경영자기구(ICSA)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영국 FTSE350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두 번 실시하는 설문조사 결과, “브렉시트로 인한 정치적 위험이 커졌다”고 답한 응답자는 지난해 12월 40%에서 지난 7월 65% 이상으로 증가했다.


경기 전망도 비관적이었다. 향후 1년간 영국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기업은 5%에 그쳤으며 3분의 2는 경기침체를 예상했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실시된 조사에서는 25% 정도만 경기침체를 전망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결정 직후인 지난해 3분기 예상보다 양호한 0.6%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으나 올 들어 성장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됐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은 0.3%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인 0.6%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ICSA의 피터 스와비 정책·연구 이사는 “이번 조사 결과는 영국 정부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를 일부 반영한다”면서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과 그로 인한 후속 조치들을 둘러싼 불확실성으로 (조사 결과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일부 산업은 이미 브렉시트로 인한 악영향을 받고 있다. 영국 자동차공업협회(SMMT)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영국 자동차산업 투자액은 3억2200만 파운드(약 4739억 원)에 그쳤다. 2015년엔 25억 파운드, 지난해에는 16억6000만 파운드에 달했다.
영국은 완성차 제품의 56%, 자동차 부품의 65%를 EU로 수출한다.

마이크 호스 SMMT 대표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 대형 자동차회사들이 (영국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중소형 부품업체들은 재빨리 떠날 위험이 있다"고 걱정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종에서도 브렉시트 충격은 현재 진행형이다. FT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브렉시트 투표 이후 1년 동안 아일랜드에 등록된 영국 변호사는 1000명에 육박했다. 예년의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유럽재판소에서 활동하는 영국 변호사들이 브렉시트 이후 고객을 잃을 것을 우려해 재빨리 EU회원국인 아일랜드로 이동한 것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스는 “지난 5~7월 영국의 중소 제조기업(SME) 생산은 7년래 최고로 올랐지만 숙련기술직 부족에 대한 우려가 생산량 증가를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영국을 탈출해 인근 EU 회원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일랜드 더블린 등이 주요 목적지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 최대 증권거래소가 위치해 은행 등 금융기업들이 선호하는 도시다. 세계 최초 증권거래소가 위치한 네덜란드와 영국과 비슷한 환경의 아일랜드도 글로벌 기업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의 존 파커 회장은 "(영국의 정치 불안이) 설비투자 등에 대한 위험 기피 성향을 증가시켰다"며 "영국 정부가 핵심 기업을 다시 세우고 영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유지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