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고율 급락의 이면…"경제 활력 잃었다"

미국 고용시장이 강력한 회복세를 띠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경제의 활력이 떨어졌음을 방증하는 신호일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자 수는 20만9000명으로 시장 전망치인 18만명을 훌쩍 웃돌았다. 실업률은 4.3%로 2001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해고율도 부쩍 낮아졌다. 지난달에 새로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이 1만 명당 66명(0.66%)으로 196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부가 별도로 낸 해고자 비율은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실업률이 3.4%에 불과했던 1968년만 해도 신규 실업수당 신청 인구는 1만 명당 102명(1.02%)에 달했다.

미국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 추이/자료: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해고율이 가파르게 하락한 건 미국 고용시장의 탄탄한 회복세를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안정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해고율이 낮아진 배경엔 고용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 내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노동력 고령화, 제조업 쇠퇴, 기업들의 리스크(위험) 회피 성향, 장기 실업률 상승 등이 해고율 하락의 또 다른 요인일 수 있다며 이는 미국 경제의 역동성이 약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1946~64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최근 은퇴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이 인력난에 직면했다고 지적한다. 베이비붐 이후 출산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미국에서는 2007년 이후 55살 이상 노동인구만 증가세를 나타냈다.

미국 보험 중개업체인 아서J갤러거의 빌 지벨 직원 보험·보상 컨설팅 책임자는 "은퇴로 인력의 큰 부분이 감소한다면 뭐하러 해고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미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다. 제조업은 생산 제품의 진화에 맞춰 꾸준하게 인력을 교체하기 마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기업들의 안전지상주의도 해고율을 낮추는 데 기여하며 미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1990년대엔 민간 신규 고용 가운데 신생기업이 차지한 비중이 15%에 달했지만 최근엔 11%로 떨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최신 보고서에서 기업들의 활력이 약해진 게 생산성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성 저하로 임금 상승에 제동이 걸리면서 소비 확대에 따른 경제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WSJ는 미국의 해고율이 실업률에 비해 크게 낮은 건 고용시장에서 사실상 벗어난 장기 실업자가 급증한 탓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27주 이상 일자리를 갖지 않은 장기 실업자 수는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7년에 비해 35%가량 늘었다. 반면 실업 기간이 5주 미만인 사람의 비중은 1940년대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 수가 그만큼 줄어 기업들이 기존 인력의 해고를 꺼린다는 설명이다.

일자리 검색 사이트 인디드의 제드 콜코 이코노미스트는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낮아진 건 스스로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어서라고 지적했다. 스스로 일을 그만두거나 귀책사유로 해고된 경우에는 실업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 두는 이들 중 상당수는 저임금·시간제 등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노출됐던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