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없는 세상'…"순두부·김밥에 계란 빼주세요"

15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계란판매대에 판매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서울 종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박선영씨(30·가명)는 16일 아침을 걸렀다. '살충제 계란'이 떠올라서다. 매일 아침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하던 박씨는 "빵에도 계란이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커피만 샀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의 A 카페는 오전 10시까지 커피를 사면 샌드위치 종류를 1000원에 판매하지만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카페 관계자는 "샌드위치 종류에 거의 다 계란이 들어있다"며 "아침에 보통 샌드위치가 최소 10개 정도 팔렸는데 오늘은 하나도 안 팔렸다"고 말했다.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계란 자체를 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제가 된 경기 남양주 등 농장의 계란뿐 아니라 계란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은 익히거나 삶아도 없어지지 않아 공포감이 더 크다.

계란 파동 이틀째인 이날 직장인들의 급식 메뉴가 달라졌다. 정부세종청사 내 급식에도 계란은 등장하지 않았다. 6급 공무원 이모씨(37)는 "평소에는 아침 메뉴로 계란찜이나 국 등이 자주 나왔는데 살충제 영향 때문에 오늘은 안 나온 것 같다"며 "공무원이지만 정보가 부족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많이 찾는 김밥집과 도시락 등에서도 계란은 자취를 감췄다.


한솥도시락 관계자는 "전날 회의를 한 결과 납품업체의 냉동 가공 계란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개별 점포에서 날계란으로 덮밥류를 조리하는 경우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오늘부터 덮밥류는 판매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다른 도시락 업체들도 긴급 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인기 품목이던 편의점 도시락도 진열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식류인 구운계란 등도 진열장에서 모두 빠졌다. 서울 마포구 한 편의점 관계자는 "계란 반찬이 들어간 도시락 두 품목은 어제부터 발주 정지가 걸렸다"며 "다른 도시락 대부분은 올해 초 AI(조류인플루엔자) 파동 당시 계란을 빼고 다른 반찬으로 대체하거나 미국산 계란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구운 계란이나 생란이 일부 진열돼 있어도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민 식당가도 술렁인다. 서울 마포구에서 9년째 김밥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8·여)는 "손님들 중 일부는 순두부 찌개나 김밥에서 계란을 빼달라고 주문한다"며 "일단 납품업체 계란은 문제가 없다고 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빵집도 비상이다. 휴업을 하는 업소까지 나왔다. 주문 케이크를 전문으로 만드는 서울의 한 빵집 관계자는 "마트에 문의해보니 계란을 구하는 데 5일이 걸릴지, 그 이상이 될지 확실치 않아 휴업에 들어갔다"며 "다음 주에도 영업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지인을 통해 '안전한 계란'을 구하기도 한다. 4살 딸을 키우는 주부 김모씨(30)는 "지인이 자연 방목해 닭을 기르고 있다고 해서 이쪽에서 계란을 구하기로 했다"며 "30알에 1만원으로 싸지는 않지만 아이 반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부터 직접 닭을 길러 계란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