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학들은 막대한 기금을 어떻게 굴렸나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갈 때 가장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은 그 길을 가본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은 어떻게 갔는지에 대한 것이다. 벤치마크로 삼을 것이 있다면 새로운 길이라도 훨씬 수월하게, 어쩌면 기존 경로보다 더 잘 갈 수도 있다.

최근 발간된 '(모험자본 조성의 원천)재단과 대학기금의 투자운용'(첨단금융출판사 刊)은 미국에서 대학기금이 존재감이 미미했던 기관투자가에서 강력한 기관투자자로 발전하는 과정을 내밀한 부분까지 풀어냈다.


공저자인 로렌스 코카드는 조지타운 대학재단의 CIO(최고운용책임자)로 재단투자 업계에서 인정받는 선도자다. 또 다른 저자인 캐슬린 리터라이저는 AI(대체투자) 사업개발 전문가다.

이 책은 미국에서 헷지펀드에 기금 자금이 몰려들었던 2007년에 발간됐다. 역자들은 10여 년 전 미국 상황이 한국의 현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고 이 책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2011년 대학들이 적립금의 50% 한도에서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금융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다. 대학 적립금은 점차 늘어날 것이고 대학 재정관리 차원에서도 수익률을 높여야 하기때문에 기금 운용 전문성을 갖춘 OCIO(위탁운용관리) 등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체계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국내 4년제 사립대학의 누적적립금은 8조2000억원(2016년 기준)에 달한다. 2014년에는 156개 대학 중 28개 대학이 주식투자에 나섰고, 이중 8개 대학이 손실을 봤다. 이들 대학의 적립금 금융투자 수익률은 2014년 0.6%에 불과했다.

1969년 이후 선발 기관투자자로 급부상한 미국의 대학기금들은 달랐다. 미국 대학들의 2014년 기준 전체 수익률은 15.5% 올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학기금들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 책은 조지타운대학이 기존 대학기금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집필된 만큼 중소 규모 대학기금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중소규모 기금은 전담 CIO를 고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12개 대학기금과 재단이 위탁운용모델 시스템을 수립한 과정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재단과 대학기금 투자업계 동료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투자철학과 접근방식을 파악하면 유익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은 대학기금을 운용과 관련된 이들만 읽어야 할 책처럼 느껴진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투자자들은 여러 명의 성공한 CIO들이다. 저자는 각 인터뷰이 들의 투자 실수담이나 투자 철학 등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독자들이 그들의 경험과 철학 그리고 전략을 배운다면 더 사려 깊은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장기 자산배분과 투자의 접근 방식에 대해 통찰력을 주고, 현행 투자환경에서 성공하기 위한 자세와 지식을 알려 줄 것이다.

이 책은 박원준 하나자산운용 대체투자본부장, 송경섭 큐캐피탈파트너스 부사장, 오세임 보고펀드자산운용 본부장, 김규진 원아시아 PE파트너스 대표가 공동 번역했다.

공역자들은 "미국에서 하버드와 예일 대학기금의 성과만이 우수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12명의 CIO의 일거수 일투족이 후발 CIO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