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내밀어도 닿지 않는 안타까운 손

2009년 계간 ‘시에’로 등단한 김선미(1965~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는 원하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공장’ 같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조물조물 만들어 같은 게 하나도 없는 독특한 시를 만들어낸다. 숙련된 솜씨로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하는데, 어쩌면 그의 시는 당의정(糖衣錠) 같다. 쓴 것을 그냥 삼킬 수 없어 단것으로 겉을 감추고, 위장하고, 겹겹이 포장해 내놓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쉽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목은 앞으로 꺾였다 뒤로 옆으로 마구 꺾인다 벽에 가로수에 부딪히다가

어디든 들이받는 일

나는 계단이 가장 어려웠다
생의 근거를 찾지 못한
무거운 머리통을 들이받으며 다시 튀어 오르는 빗방울, 계단에 수도 없이 많은 까닭과 이유들이 왕관 모양으로 피었다 사라진다

한 번에 내리꽂는

이 흥건함,
깨진 해골에서 번진 물이 계단의 목을 따라 꺾인다
- ‘내 머리는 자주 넘어진다 -스콜’ 전문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특징은 사물에 기대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제시 ‘생일’은 케이크라는 사물에 기대고 있다. 케이크를 의인화한 이 시는 케이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생일잔치의 광경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 ‘내 머리는 자주 넘어진다 -스콜’은 스콜을 의인화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인지라, 폭우를 “무거운 머리통”에 비유한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사람처럼 머리부터 지상에 처박히기 때문에 “목은 앞으로 꺾였다 뒤로 옆으로 마구 꺾”이고, “어디든 들이받는”다. “생의 근거를 찾”을 수 없으므로 “나는 계단이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계단은 절벽처럼 가파르게 오르내리고, 평범한 삶의 굴곡을 상징한다. 하지만 평범할 것 같은 삶일지라도 “수도 없이 많은 까닭과 이유들”이 고여 있고, 상처뿐인 영광처럼 “왕관 모양으로 피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깨진 해골에서 번진 물”이라기보다 피가 계단에 흥건하다.

물이 눈 속에서 얼어버릴 때

손을 잡아달라 했다 언니는 친구와 저수지 속으로 들어가며 산조차 고요할 때 둥둥 떠갈 때 손을 내밀어도 닿아지지 않을 때 점점 멀어져 갈 때 소리쳐도 소리가 되지 않을 때

물의 무늬가 결정지어질 때

잘못 거셨어요, 라며 끊었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못 알아들었을 때 그럴 리가 없을 때 다시 걸려왔을 때 죽음은 부정되지 않을 때 아버지, 상여에 꽃들이 켜져갈 때 마당을 떠나려 할 때

온도의 차이는
피지 말아야 할 때 피는 꽃의 반성처럼 울지 말아야 할 때 눈물이 나오는 표정의 틈이다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지지 못하는 물이 있다 굳어지느라 뻑뻑해질 때

얼마나 많은 물의 무늬가 출렁거릴까
눈으로 결정되기 위한,
수면을 잡으려는 언니의 손과 끊어진 수화기 들고 울었을 엄마의 울음 같은
물 입자의 경우처럼

더듬거리며 눈이 내게로 쌓여올 때
- ‘눈의 결정’ 전문

시 ‘산불 진화훈련’에서 “나는 물이 무섭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단것으로 감싼, 감싸려고 했던 쓴 것의 실체가 ‘두려움’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언니는 친구와 저수지 속으로 들어가며” 손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아 “물의 무늬가 결정지어”는, 즉 언니와 친구의 죽음(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때”의 연속은 계단처럼 삶의 굴곡을 의미하고, 언니의 죽음 이후 가족과의 거리감을 나타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도 못 알아들을 만큼, 아버지 상여가 “마당을 떠나려 할 때” 고향에 갈 만큼 아파하면서 겨우겨우 견뎌낸다.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는 “비 오는 경회루 연못 속에 내 그림자를 던져 넣고/ 링 안으로 자꾸 걸어 들어간다”(‘문화생활’)는 시구에 다 드러나 있다.

언니와 친구의 죽음으로 생긴 두려움은 물과 여름, 그리고 손과 얼굴로 전이된다. 사건이 일어난 것이 여름이고, 물에 빠져 죽고, 끝내 손을 잡아주지 못했지만,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의 사생아처럼 나의 두 손이 생겨납니다”(‘나는 두 손이 있어 불안합니다’), “끈적거리며 빨간 손이 여기저기 묻었다”(‘고가도로를 달렸다’), “한 손을 자신의 머리 무게만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질문 있는 사람’), “다 자라지 못한 손가락이 백골처럼 꽂혀 있다”(‘모래가 운다’), “손가락을 빨아먹고 사는 내 몸엔 손들이 모여 있다”(‘코넬리아디란지 증후군’) 등과 같이 손의 이미지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손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이제 나도 어른이라서 좋다 놓치고도 잡지 않을 수 있으니까”(‘당인리발전소’)에서 보듯, 어른이 돼서야 어느 정도 극복한다. 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자살을 포함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한 시인에게 시는 구원과도 같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위안 이상으로…. 그는 단순히 시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적진에서/ 치열하게 담판을 벌여 빼”(‘사명대사’) 오고 싶을 만큼 시는 그의 삶에서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등단작과 초기작품을 첫 시집에서 과감하게 뺀 것은, 시를 대하는 시인의 결의가 어떠한가를 짐작게 한다.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김선미 지음. 포지션 펴냄. 136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