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서 찬밥된 KAI 회사채, 자금난까지 오나

#.채권 매니저 A씨는 지난 16일 출근 직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국항공우주(KAI) 회사채를 매입할 생각이 있냐"는 제안이다. 상대방은 채권값을 할인해 주겠다고 했지만 A씨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불과 2개월여 전 까지만 해도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누렸던 한국항공우주 (49,200원 ▲150 +0.31%) 회사채가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수익률은 낮아도 높은 신용등급을 매력 삼아 KAI 회사채를 사들였던 기관투자자들이 분식회계 논란 이후 손해까지 감수하며 채권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회사채 시장에 KAI 회사채 매물이 나오고 있다. KAI가 14일 외부감사 의견 '적정'을 표시한 반기보고서를 낸 직후부터다.

KAI의 반기보고서상 미상환 회사채는 총 6000억원 어치다. 나이스신용평가 기준 'AA-' 등급 회사채다. 오는 22일 만기가 돌아오는 2000억원 어치부터 2022년 5월 말 만기 1000억원 어치 등 3·5년물 채권이 1.8~2.8%대 이율로 발행됐다.

판매자 측은 KAI 회사채를 할인하거나 이자 프리미엄 조건을 제시한다고 한다. 주식으로 치면 손절매다. 운용 중인 포트폴리오에서 KAI를 제외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채권을 팔려는 것이다. 지난 5월 말에 3·5년물 2000억원 어치 발행 당시 2배 넘는 기관투자자 수요가 몰린 것과 정반대 현상이다.


KAI 회사채 손절매 움직임은 투자 위험도를 줄이려는 의도다. KAI 같은 우량등급 회사채는 주로 기관투자자나 사모펀드 포트폴리오에 안전자산 역할로 포함되는데, 분식회계 논란으로 회사 신뢰도가 떨어진 이상 안전자산 매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펀드 투자항목에 포함된 KAI 회사채를 보고 펀드매니저에게 매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관투자자 리스크 관리 지침상 KAI 회사채 보유 시 보유경위와 처분 계획 등을 보고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최근 KAI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며 투자 부적격 가능성도 나온다.

문제는 분식회계 의혹을 감수하고 살만한 투자 매력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다른 우량 회사채 등 대안이 많은 상황에서 최고 3%가 안 되는 연수익률(이자)을 위해 부담하기엔 분식회계 의혹이나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 등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안전자산으로 선호했던 '저위험 저수익' 매력이 분식회계 이슈에서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일하는 한 채권전문 PB(프라이빗뱅커)는 "KAI 회사채를 보유하기 위해 펀드매니저나, 기관투자자 실무에서 안고 갈 부담이 너무 크다"며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포트폴리오에서 빼려는 것"이라고 현상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