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 별세..韓 전자산업 '거목' 지다

고 강진구 전 삼성전자 삼성전기 회장.

한국 전자업계의 '거목' 강진구 전 삼성전자·삼성전기 회장이 19일 오후 8시41분 향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27년 경북 영주 출생인 강 전 회장은 대구사범학교와 서울대 공대 전자과를 졸업했다. 육군 대위로 군 예편 후 KBS와 미8군 방송국,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 삼성전자 상무로 전자산업에 첫 발을 디뎠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신뢰 속에서 강 전 회장은 삼성전자 전무, 사장, 삼성전자부품, 삼성정밀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등을 역임했고, 이후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관, 삼성전기 회장, 삼성의료원 강북병원재단 이사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 삼성 최고위 경영진으로서 '초일류 삼성'의 초석을 닦는데 기여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1995년 '삼성 명예의 전당' 설립 당시 첫 번째 헌액자가 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1996년 강 전 회장이 발간한 회고록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 추천사에서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최대의 공로자"라고 평가했다.


강 전 회장은 동양방송(TBC) 개국 당시 기술부장으로 재직하며 '우리 힘으로 방송기재를 만들자'며 국산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고, 이를 눈여겨 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발탁돼 초고속 승진 신화를 남겼다.

반도체 산업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강 전 회장은 강기동 박사가 한국 최초로 설립한 전공정 반도체 회사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할 당시인 1974년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내 이병철 회장 집무실에서 인수 계약에 참여하면서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삼성전자가 1983년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당시에도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했고, 한국이 D램 세계 1위로 도약하는 시금석이 됐던 256kb D램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와병 중에도 한국 반도체 명예의 전당에 처음 헌액되는 핸드프린팅을 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경영자로서 △핵심기술 강조 △선도 경영 △디지털시대에 대비 △사업다각화 △자동화 등을 강조하며 삼성전자 신화 창조에 앞장섰다. 그는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고 결단을 못내리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라고 했던 행동주의자였고, "참다운 기업가가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믿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2000년 12월31일 건강 문제와 후진 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에서 사임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밖에 강 전 회장은 평통 자문위원, 전자공업진흥회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6년에는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됐다.

한편 강 전 회장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3일 오전이다. 유족으로는 강병창 서강대 교수, 강선미 서경대 교수와 강선영 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