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넌 경질에 中 반색?…전문가들 "기대 말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월22일 백악관에서 취임 선서를 한 스티브 배넌을 격려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미국 백악관의 대표적인 대중 강경론자인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가 경질된 게 중국에는 일시적인 위안에 그칠 전망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일 보도했다.


배넌은 백악관에서 경질되기 직전 미국 매체인 '아메리칸프로스펙트'와 한 회견에서 "미국과 중국은 세계 경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실존적인 투쟁에 갖혀 있다"며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전쟁에 광적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산하 매체인 환구시보는 배넌의 경질 소식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매체는 전날 논평에서 배넌이 백악관을 떠나면서 '유독한 유산'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며 배넌의 퇴장이 상징 이상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배넌의 경질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전략에 변곡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넌의 퇴출이 최근 무역불균형,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으로 고조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완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얘기다.

그러나 배넌 경질 효과는 미·중 관계에서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천딩딩 중국 지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배넌이 경질된 게) 중국에 단기적으로는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배넌은 한 사람일 뿐, 최종 결정권은 트럼프에게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배넌 퇴출에 따른 백악관 참모진 개편이 중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천 교수는 중국에 오히려 악재가 될 것으로 봤다. 중국 정부가 위험이 큰 개인적인 접근보다 기관을 상대하는 걸 선호한다는 이유에서다.

호주 시드니대의 미·중 관계 전문가인 애슐리 타운스헨드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에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데니스 시어 USTR 부대표 등 대중 강경파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배넌의 해임으로 트럼프의 아시아팀이 유연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바오후이 홍콩 링난대 정치학 교수는 배넌의 부재로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노선이 약해지는 게 오히려 중국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예로 배넌이 주도한 미국의 고립·일방주의는 트럼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로 이어져 중국에 이익이 됐지만 트럼프의 외교정책이 전통적으로 기울면 이런 반사이익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중국에 경제 갈등과 관련한 발언 수위는 낮출지 몰라도 전략·안보·외교를 둘러싼 압력은 더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